冬지 다음날 /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 밥은 굶지 않는가?
- 아이들은 잘 크는가?

  할머니. 할머니는 이 생에 있지 않는 영혼들 가운데, 가장 내가 그리워하는 이름이다. 할머니는 가끔 삶의 뒤엉킨 문제들을 풀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을 때면, 조용히 어깨를 툭툭 쳐주시거나, 혹은 나쁜 맘을 먹을 때면 살아있는 어머니보다도 먼저 알아, 나를 꾸짖는 존재이다.

  전동균 시인의 두번째 시집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세계사) 중 자꾸 17쪽쯤에서 서성이게 하는 이 시는 저 세상에서 잠잠히 계신 할머니를 부르게 했다. 동지 다음 날 아침, 뜰안의 낯선 발자국은 시인 뒷마당을 가로질러 와 문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 낯선 발자국. 시인의 처음 생각처럼 날짐승 혹은 바람의 흔적이었을까?

  시의 두 번째 부분에서 등장하신 어머니는 앞선 추측들을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게 하고, 시를 읽는 흐름을 변주곡처럼 바꾸어 놓는다. 아들의 삶이 근심되어 죽어서도, 살아서도 걱정 뿐인 어머니는 동지 날 저녁 내내 집 구석 구석을 돌아보다, 그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한참을 문앞에서 서성이다,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라는 싯구에서처럼 실은 죽음과 삶의 공간은 서로 부르면 닿을 수 있는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존재하는 듯하다. 그 곳에서,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이렇게 묻고 계시지 않는가.

/ 이인자 (국문 97년 졸업,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