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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피아노 - 김은정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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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7.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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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건반이네
자판도 건반
책꽂이도 건반
책 속의 활자들도 건반
그 뿐인가 바닷가 은모래 밭도 건반
솔가지 사이로 걷는 오솔길도 건반
나의 마음도 건반
당신의 마음도 건반
그래서 잘못 건드리면
예기치 않는 소리가 나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소리라고 나쁠 순 없어
건반을 잘 다스리는 사람
세상을 잘 연주하는 일이 중요해
가끔은 반음을 올리고
더러는 반음을 내리면서
얼룩말 무늬의 얼룩덜룩한 말들 데리고
한 옥타브 한 옥타브 아래 탕탕 평평 하는 일
낑낑거리면서 행복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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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던 시인은 그 날 따라 유난히 컴퓨터 자판 소리가 피아노 소리처럼 청명하게 들렸을 지 모른다. ‘아, 자판이 피아노 건반 같네.’ 시인의 상상력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책꽂이도, 책 속의 글씨들도, 시인의 눈에는 피아노 건반 같아 보인다. 바닷가로, 오솔길로 건반에 대한 상상력은 공간을 날아오른다. 마구 건너뛰고 날아오른 건반에 대한 상상력은 메인스타디움에 들어오는 마라톤 선수처럼 시인의 마음으로 다시 경건히 들어온다. 잘못 친 건반으로 예기치 않았던 소리는 상처가 되고, 상처들은 아픈 것 만이 아니라, 여물면서 더 단단해졌다. 단단해진 후 세상을 연주하는 데 더 자신감도 생긴다. 능숙한 연주자는 반음을 올리고, 내리는 데 매우 유연하다.

  88개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 그리고 이 시속에서 처럼 <피아노>와 동일시 되는 <삶>, 88개의 건반으로 끊임없는 새로운 소리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새로운 소리들을 연주해 봤자, 겨우 88개 안에서 조합된 소리 아닌가 싶은 것이 문득 서글퍼지기도, 낑낑거리면서 행복해지기도 한다. 건반을 ‘얼룩말 무늬의 얼룩덜룩한 말들’이라 표현한 것과, ‘탕탕 평평’ 시끄럽고 평안한 삶의 소리들을 잘 조합한 것이 곱씹을수록 공감이 간다.

/ 이인자 (국문 97년 졸업,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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