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를 마감하는 요즘 세계는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학술부에서는 우리시대의 현좌표를 찾고 미래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그동안 논의되어 온 근대와 탈근대의 이론을 알아본다.

1. 근대와 탈근대란 무엇인가
2. 근대와 탈근대의 대립

  모던, 포스트 모던 논의의 대립점을 하버마스와 리오타르를 통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먼저 하버마스는 『근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모던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투명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버마스는 근대가 과학과 기술의 발전, 종교의 세속화, 도덕과 예술의 자율화, 민주주의의 원리, 언론의 자유, 비판적 공론 영역의 형성을 낳은 점에서 이러한 분화, 합리화(Rationalisation)가 지닌 긍정적 측면을 인정한다. 그는 이러한 근대의 특성이 분화와 동시에 분화에 의한 발전이므로, 분화의 병리현상만을 폭로하고 규범적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회의주의적 이성 비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므로 포스트 모던처럼 이러한 분화를 무시하고 이성의 타자에 매달리는 태도는 부당하므로, 근대 합리성의 양면성을 공정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 철학에서 마련된 지배 모델, 인간의 주관적 이성을 주어로 삼아 대상세계와 타인을 지배하는 주체-객체 모델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는 이처럼 주관성을 특권화하는 의식철학의 패러다임을 의사소통적 이성의 틀, 상호주관성의 틀로 대체한다. 주체들은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능력과 행위능력을 지니고 상호이해를 목표로 삼아서 보편적 상호주관성을 추구한다.

  그는 체계와 생활세계(Lebenswelt)를 구별한다. 체계는 화폐와 권력이 주도하는 경제, 행정 영역이지만, 생활세계는 이러한 도구적 이성을 벗어나 상호소통하는 주체들의 공간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사소통적 이성의 잠재력은 자본주의적 근대화 과정을 통해 전개되면서 동시에 왜곡된다. 생활세계는 체계의 내부 식민지가 된다. 그렇지만 왜곡된 의사소통적 잠재력은 합리적 절차에 의한 합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생활세계에서 상호이해를 추구하는 주체들은 생활세계 안에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의견을 나눈다. 이 생활세계는 의사소통의 지평(Horizont)을 이루고,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문화적 자명함의 자원을 제공한다. 이런 의사소통 참여자들의 담론(Diskurs)은 항상 타당성 요구를 지향하므로 언어로 매개되는 의사소통적 행위는 강제와 억압 없는 자유롭고 대등한 상호주관성, 근본적 민주주의 원리를 이상으로 삼는다. 이런 의사소통 패러다임은 이성의 전제(專制)나 왜곡된 사용에 대한 비판이면서 그 대안이다. 이에 대한 리오타르의 반론을 요약해 보자.

  리오타르에 따르면 ‘모던’은 ‘인간의 보편적 해방’이라는 목적을 추구한다. 리오타르는 큰 이야기, 메타 담론(meta- discourse)에 바탕을 둔 모던에 대해 그것을 거부하는 ‘작은 이야기들’을 허용하는 포스트 모던을 대비시킨다. 이때 큰 이야기는 모든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정치적’ 이야기와 모든 지식을 총체화함으로써 절대적 인식을 완성시킨다는 ‘철학적’ 이야기이다. 이것은 다른 작은 이야기들의 근거를 자처하거나 그 궁극 목적(telos)으로 군림함으로써 그것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이런 보편적, 총체적 이야기는 단일성, 차이들, 이질성, 공약 불가능성을 은폐하고 억압한다. 따라서 포스트 모던의 작은 이야기들은 억압적 합의를 깨뜨리려 하고, 메타이야기를 거부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보편성이 군림하는 장(場) 대신에 작은 이야기들이 서로 다르면서 이질적인 채로 공존하는 장이 마련된다.

  여기에서 한 이야기는 이질적인 다른 이야기로 번역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야기들은 중심이나 총체성에 환원되지 않은 채로 혼재하면서 공존한다. 여기서는 어떠한 보편적 통일의 시도도 위험한 것으로 본다. 리오타르는 중심이 없는 작은 이야기들이 만드는 차이의 공간, 새로운 장이 동일성에 대해서 차이를, 총체성에 대해서 파편적 계열을, 진리와 논리에 대해서 위반과 반리(反理 paralogie)를 내세운다고 본다. 그는 예를 들어 모르는 것(l'in connu), 이의(異意), 발명(invention), 실험(experimentation) 등을 강조하는 양자역학적 세계상을 제시한다. 이러한 포스트 모던의 ‘이의의 지평’은 결코 합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떠한 보편의 권위도 내세울 수 없다. 모던과 포스트 모던의 대립은 서로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원시인과 문명인 사이의 대화처럼 합의를 마련하지 못한다.

  포스트 모던은 보편적, 절대적 진리나 정의가 불가능하므로 총체성의 기획을 포기할 것을 촉구한다. 전체주의를 공격하려는 이런 관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근대의 수많은 위기들에 대해서 단지 지적, 예술적인 게릴라전을 펴는 것으로 그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보편적이고 완전한 이론이나 실천 강령으로 모든 문제와 위기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없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보편적 해결을 추구하는 노력 자체를 포기할 수도 없다. 사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 예로 복합성의 사고틀을 참조해 보자.

  모랭(Morin)은 ‘기초 인류학’에서 인간이 탄생하는 과정(hominisation)을 검토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한편으로는 이성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을 즐기고, 이미지를 창조하며, 오류를 범하고, 놀이를 하며, 꿈을 꾸고 사랑하는 점에서 미친 인간이다. 인간은 복합적 존재이다. 이런 측면을 무시하고 이성과 비이성을 고립시켜 그 하나를 주장하는 것은 단순화하는 모델에 지나지 않는다.

  논점이 이성을 통해 완전한 질서를 추구하는 시도와 그것을 거부하고 차이들의 무질서에 머무르는 시도로 대비된다고 할 때, 질서와 무질서, 진리와 무지, 필연성에 묶여 어떠한 자유도 없는 존재와 어떠한 필연성도 없는 완전한 자유라는 대립항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런 문제 제기 자체가 형이상학적 덫일 뿐이다. 모던은 이성의 양날로 비이성을 무찌르려고 하지만 이성에 의해 은폐된 이성의 타자를 인정해야 하고, 비이성을 특권화하려는 시도는 이성이 지닌 긍정적 측면까지도 내던지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모던과 포스트 모던의 대화에서 모던은 자신의 그늘을 인정하는 겸허함을 보여야 하고, 포스트 모던은 모던을 공격했던 그늘에서 빛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빛과 어두움을 잘 섞어서 우리의 바람직한 삶이 가능한 적절한 밝음의 세계를 마련해야 한다.

/ 양운덕(「역사철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