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팎으로 총파업의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개정된 노동법이 시행되면 노동자뿐 아니라 국민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사회부에서는 ‘노동법 개악 시행’을 가정, 박노동이란 가상인물을 통해 4년 후 노동현장 가상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노동법 개악을 사수했어야 했어. 이렇게 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변형근로제·정리해고제 화합하면 경쟁력은 무한대가 된다’ “그때, 그렇게 밀리지만 않았어도… ” H그룹 광고를 보고 있던 박노동(50, 생산직 보조)씨가 내뱉은 말이다. 1997년 1월, 그때 박씨는 H그룹 울산지역 공장에서 작업반장을 맡고 있었지만 노동법 개악을 반대하여 동료들과 파업을 주도했었다. ‘노동법 개악 시행’ 후 박씨는 사측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의 이유로 정리해고 당했다. 물론 실제 이유가 ‘파업참여·주도’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총파업 투쟁을 같이 한 박씨의 대부분의 동료들이 사측이 주장하는 ‘경영악화’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의 해고 명분이 ‘파업참갇주도’였으니, 쟁의기간 동안 ‘무노동·무임금’ 원칙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박씨의 나이는 46세, 한 가정의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그의 동료들도 전직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 당시 정부는 노동법을 개악한 후 임시특별법을 제정하기도 하고, 고용 장려금을 지급하기도 했지만 ‘이윤 추구’를 우선하는 기업들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해고당하면 재취업되거나 복직되는 노동자는 거의 없었고, 더욱이 ‘파업주동 딱지’가 붙은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박씨는 H그룹의 하청업체인 S물산에 ‘생산직 보조’로 임시취직이 됐다. 사장과 20여명의 생산직노동자로 작업이 이루어지는 S물산은 노동자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사장에 의해 관찰될 수 있고, 그 속에서 노조를 운운하는 것은 곧 해고를 의미한다. 물론 노조가 결성돼 산별노조에 가입한다 하더라도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에 의해 노조원의 활동비조차 마련할 수 없으니 매해 임금단체협상투쟁은 물론 변형근로제 도입도 사측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S물산에서 만난 한해방(50, 정규생산직)씨는 “이제 잔업수당도 없어져 월급이 35만원이나 줄었지. 일이 많을 때는 매일 철야하고, 일이 없으면 회사에서 빨리 집에 가라고 하더군. 노·사 합의 하에 노동시간을 조정한다 했는데, 노조가 없으니…. 또 회사 사정에 따라 언제 해고될 지 몰라. 이래 저래 몸고생,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야”라며 한탄했다.

  그동안 박씨는 S물산 뿐만 아니라 H그룹 하청업체를 전전하며 생산 보조직과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박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노동법 개악을 사수했어야 했어. 나도 이 정도인줄 몰랐지 뭐야. 그때 막았으면, 우리 아들놈은 좋은 세상에 살텐데”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그래도 나는 편하지. 내 친구는 정리해고, 권고 사직이란 것 때문에 우울증과 신경증으로 고생 중이야. 다른 친구는 알콜중독까지 걸렸지”

  시내 곳곳에는 실직자를 위한 직업알선업체와, 실직자를 위한 실업상담소, 직장인을 위한 정신신경과가 성행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은 해고자들의 자살보도와 연이은 범죄보도로 조용할 날이 없고, 거리에는 어깨를 늘어뜨린 실직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노조도 없고, 공무원·교직원 단결권도 없고, 제3자 개입이 금지되는, 사장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노동자를 해고시킬 수 있는 법이 있는 나라. 2001년 ‘자본가의 나라’ 한국이 거기 있었다.

/여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