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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7일, 한국원자력학회는 과기처가 의뢰한 ‘원자력진흥종합계획’ 수립에 대한 연구 결과에 대해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 원자력학회는 “앞으로 2010년까지 핵기술 세계 3위권에 진입하기 위해 핵연구개발비를 국민 총생산의 0.1% 수준으로 제고하여
2006년까지 약 3조 7천억원 정도를 확보하는 한편, 2010년까지 5만명의 연구, 기술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1세기에도
핵에너지 이용을 계속해서 확대해나가자는 얘기다. 과학기술처는 이러한 원자력학회의 의견을 바탕으로 타 부처와의 의견 조정을 거쳐 7월말 이 계획을
최종 확정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핵팽창 정책은 핵에너지로부터 급속히 탈피해 가고 있는 전 세계적 추세와 정반대되는 것이라 큰 충격을
준다.
우리에게 핵기술을 수출한 ‘핵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등의 상황을 살펴보자. 이들 나라 중 어느
곳에서도 새로운 핵발전소를 짓지 않고 있다. 70-80년대 핵에너지에 전력 소비 50% 이상을 의존하던 스웨덴 같은 나라는 2010년까지
12개의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는 장기 계획을 확정한 상태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핵발전이 이렇듯 ‘사양산업’이 된
가장 큰 배경은 안전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구심이다.
수백만 개에 달하는 부품 중 단 한 개에 이상이 생겨도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리고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분출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적 장치를 하고 각종 제도적 보완을 하다 보니 이제 핵발전소를 짓는 것은 너무나도
까다롭고 경제적으로도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진국의 전력회사는 핵발전으로부터 서서히 등을 돌리게 됐다.
핵발전의 '아킬레스건'이라 불리는 핵폐기물 문제 역시 이러한 '핵 퇴조'를 가속화시킨 주요한 원인이다. 핵폐기물은 수천, 수만년동안 방사능을
내뿜기 때문에, 현재의 기술로는 안전한 최종 처분이 불가능하다.
핵에너지를 둘러싼 사회적, 기술적 상황은 한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핵폐기물처분장 선정은 국민적 반발에 부딪혀 지난
8년여 동안 전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핵발전소 신규부지뿐 아니라 영광, 울진 등 기존 부지에서도 더이상의 추가 건설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반대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전력 생산 중 핵발전 비율을 2010년까지 40% 이상으로 제고하고 이 분야에 3조에 이르는 국민
세금을 배정하자는 것은 정말 무모한 계획이라 아니할 수 없다. 원자력학계나 과학기술처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좀 위험하더라도 핵발전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전력 생산의 대안이 핵에너지밖에 없는가? 물론 다른 방식이 있다. 현재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에너지
효율성 제고를 통한 수요 절감 방안과 재생에너지의 개발이다. 수요 절감방안은 예를 들어, 일반 전구를 고효율 전구로 교환할 경우 전력 수요를
70%까지 절감할 수 있다. 이러한 에너지 절감 기술을 냉장고, TV, 세탁기, 엘리베이터 등에 다 적용한다면, 이러한 계획을 지역이나 국가
차원에서 진행한다면, 발전소를 짓지 않고도 그만큼의 전력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소위 ‘절약발전소’(Saving
Reactor)다. 태양력, 풍력, 바이오 매스 등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를 이용하는 재생에너지도 이미 실용화단계에 접어들었다.
국가의 에너지, 전력 정책은 백년지대계이다. 현재 어떤 정책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는 세계적인 추세와는 정반대로
'핵에너지'라는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21세기의 대체에너지 개발에 적극 나서는 선진국 대열에 동참할 수도 있다. 다른
나라들이 모두 대체에너지 이용을 실용화하고 환경 친화적인 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을 때, 우리만 핵기술에 매달리고 핵발전소와 핵폐기물 방사능
관리에 땀을 뻘뻘 흘린다면 그 때 입을 국가적 손실은 얼마나 막대할 것인가? 지금 정말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원자력종합진흥계획'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성 제고와 재생가능 에너지 진흥을 위한 특별계획'이다.
/ 문유미(환경운동연합 반핵평화부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