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에 들어 각 기업체에서 세계적 경쟁력 확보라는 미명하에 명예퇴직제도를 실시하더니, 정부와 여당에서는 한 술 더떠 ‘정리해고'를 골간으로 한 노동법을 개정했다. 개정노동법이 실시될 경우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아무리 정리해고의 요건을 엄격하게 유지한다 하더라도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불안한 고용상태에 처하게 된다.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정리해고제가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제도로서, 산업구조 조정기에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 제도가 반드시 정착돼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터무니 없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정리해고제가 선진국에 보편화된 제도이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면, 다른 노동관계법도 선진국 수준으로 개정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이미 오래전에 정착된 복수노조와 교원단결권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유독 기업가에게만 유리한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대체근로제를 강행하려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국민전체에게 행정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립적 기관이라기보다 ‘기득권자들을 위한 집행기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보장제도가 부실한 우리 나라에서 정리해고를 당하는 사람은 선진국의 실업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경제적, 심리적 타격을 입게 된다. 소위 복지국가라고 일컬어지는 선진국에서는 해고를 당한다 하더라도 포괄적이고 관대한 실업보험제도와 공공부조제도를 통해 기본적인 생계는 사회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반면 우리 나라의 실업자는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고용보험제도하에 실업급여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 노동자의 과반수가 이 제도에 가입돼 있지 않고, 가입자들의 경우에도 연령별로 최단 30일에서 최장 1백20일 정도밖에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급여기간이 지나면 공공부조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 나라의 생활보호법에는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은 생계보호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렇듯 기본적인 생계마저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보장제도를 가지고 선진국형 노동관계법을 강요하는 것은 양복입고 갓을 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지나지 않으며, 언제까지 노동자들만이 고통을 ‘전담' 해야 하는지 암담하기만 하다.

  비록 때늦은 감은 있으나, 대통령의 사과성명 이후에 정부와 여당은 정리해고제의 삭제 등 야당이 요구하는 노동관계법 주요 재개정조항을 조건부로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디 이러한 입장이 결실을 맺어서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 문진영<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