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은 한림대 졸업생임을 밝히기 싫은 괴로운 시간이었다. 교동사무소의 사회복지 전문요원으로 일한 지 1년 5개월. 전임지의 취로사업(생활보호대상자를 인부로 고용해 지역 사회 공공사업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 하천변 정비로 이곳 저곳 사업장 위치와 그날 작업량을 지시하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근무지의 취로사업이 쓰레기 집하장을 정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침 9시 30분쯤 취로사업을 원하는 생활보호 대상자 할머니들을 모시고 쓰레기 더미를 처리하러 간다. 쓰레기가 뒹굴고 있으면 “할머니 이런 봉투(종량제 봉투)에 있는 것들은 저곳에 모아 놓으시고, 깡통은 투명 봉투에 담으시고, 우유팩은 이 상자에 담으세요 그리고 유리병은 각자 가져오신 봉투에 담아가세요 (팔면 할머니들에게 취로사업 노임 외에 부수입이 되므로, 어떤 할머니는 냄새가 고약한 유리병도 담아 가신다. 잘 행군 후 말려서 동사무소에 가져오면 두루마리 화장지로 바꿔주므로.) 검은 봉투는 제가 검사한 후에 한 편으로 밀어 놓을테니까 나누어 드린 파란색 공공용 봉투에 담아 주세요”라고 말한 후 취로사업을 진행한다.

  나는 모아 온 검은 봉투들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은 검은 봉투를 풀어보니 검은 봉투, 또 검은 봉투, 그 속에 나타난 것이 죽은 개의 비참한 모습과 구더기들이었다. 그후로 ‘검은 봉투’는 공포의 대상이 됐다. 사오월만 지나면 오래된 검은 봉투는 구더기들이 들끓기 일쑤다. 내가 이런 불법 쓰레기봉투를 풀어서 검사하는 이유는 ‘한림대학교 ○○학과 김아무개, 교동○○ - ○○ ○/○ 이 길동’과 같이 쓰레기를 버린 사람을 찾기 위해서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가장 화날 때는 ‘한림대학교 학생들이 버린 것이구나’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왔을 때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쓰레기 종량제 실시’에 관한 리포트를 쓴 겉표지를 버리기도 한다. 과연 그 학생은 종량제봉투 사용에 대해 어떤 내용을 제출했을까? ‘불법쓰레기 단속일’은 전직원이 합동으로 단속하는 날이다. 이때마다 들려오는 이야기는 ‘한림대 학생들의 의식 수준이 이정도밖에 안되나?하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림대 졸업생으로 매우 부끄럽다. 결코 한림대 학생만 검은 봉투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대학생의 역할은 가까운 미래에 크고 작은 조직에서 모범이 되는 것이다. 할머니들은 이런 작업을 하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하신다. “어머나, 이 아까운 것들… 누구 할머니 이것 가져가라 이것 신어라” 깨끗한 슬리퍼가, 깨끗한 무엇 무엇들이…. 내 눈에도 버려지기는 아까운 물건들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아까운 쓰레기들이 검은 쓰레기 봉투 안에서 나온다. 특히 한림대 학생들임을 증명할 때 또 다시 내 후배들이 부끄러워진다. 이번 여름에는 취로사업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낼 수 있게 후배들이 공포의 검은 봉투를 내놓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 사회복지 전문요원 홍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