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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의 언어학과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 정리 / 현존의 형이상학'으로 비판할 수 있는 근거 마련
한글날 아침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지병으로 작고했다는 외신을 읽고 기분이 착잡했다. 어떤 식이든 적지
않게 그의 영향을 받았으니 만일 프랑스에 있었다면 그의 장례식에라도 참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유방식에 흔쾌히 동의하기 어려웠던
나로서는 이제 그의 힘든 글을 덜 읽어도 되겠다는 안도감도 없지 않았다. 데리다는 서구 이론을 공부하는 나에게 삼키기도 힘들고 뱉어낼 수는 결코
없는 그런 자리에 있었다. 이런 감정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거부할 수도 그렇다고 마냥 환대할 수만도 없는 데리다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92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려고 했을 때 상당수 교수들이 수여에 반대했었다. 결국, 이
문제는 투표에 붙어졌고 336 대 204로 학위수여 쪽으로 결정되었지만 명예박사학위 수여 문제가 교수들의 투표에 붙여진 것은 이 대학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데리다는 1930년 7월15일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2년 10월 독일
점령 하의 비시 정권에서 식민지와 프랑스에서 인종차별과 관련된 법을 청원했다는 이유로 불과 열두 살 때 고등학교에서 제적당했다. 몇년 뒤 파리로
간 그는 1952년 장 폴 싸르뜨르 등 엘리뜨의 산실인 파리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에 입학했다. 1980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그 철학과에 재직했고, 알튀세르의 초청으로 1965년 모교인 고등사범학교로 자리를 옮겨 1984년까지 가르쳤다.
1983년엔 국제 철학학교를 열어 초대 교장에 취임했다.
그의 철학은 난해하기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데리다를 읽기로 작정했다면 상당한 수습기간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추상적 개념으로 점철된 철학과는 달리, 그는 사회활동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1981년 체코의 저항 지식인들과 모임을 연 뒤 체코 당국에
체포·구금됐고, 넬슨 만델라 구명운동과 인종차별 및 동성애자 차별 철폐운동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지병을 앓으면서 하버마스와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 및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데리다의 영향력은 단지 철학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이론은 문학비평, 정치학, 문화연구, 페미니즘, 사회학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그 흔적을 남겼다. 데리다는 플라톤 이후 서구의 철학을 ‘형이상학'이란 말로 폄하한다. 그의 사유체계에서 형이상학이란 만들어진 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현존(presence)의 이념에 기반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그는 소쉬르의 언어학과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받아들여
이를 정교하게 다듬어 전통철학을 ‘현존의 형이상학'으로 비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소쉬르 언어학의 기본원리는
‘차이(difference)' 개념이다. 소쉬르 이전까지 언어는 늘 현실과의 관계에서 설명되었으나, 소쉬르에 오면 언어학에서 현실 개념은
사라지고, 오로지 기표(=소리 및 영상)와 기의(=의미)만 남는데, 기의는 기표들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한다. 철학적으로 차이에 의해
의미가 결정된다는 것은 본질주의의 부정에 해당되는데, 데리다는 이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이를 소쉬르의 주장보다 한층 더 밀고 나간다.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설정하면서 기표들로 구성된 일정하게 닫혀있는 체계(=구조)를 연상했었다. 그러나, 데리다는
기의가 기표에 의해 결정되지만, 기표의 체계가 결코 닫혀있지 않을 뿐더러, 언어학에서 기의는 기표들의 ‘차이에 의해 결정되면서'도 동시에 ‘그
결정이 끊임없이 연기되는' 이중의 활동이 진행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사전을 찾아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민주주의' 개념의 예를 들자. 우리는
이 뜻을 알기 위해 사전을 찾는다. 사전의 해설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 기의는 수많은 기표로 구성되어 있고, 불행하게도 이 기표들의 의미도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주권',
‘국민', ‘정치' 등의 기의를 다시 사전에서 찾아야 하고,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최종적 기의에 우리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차이(difference)에 다시 연기(deferral)가 보태진 데리다의 개념을 나는 차이(差移)로 옮기는데, 일반적으로는
흔히 매우 어색한 번역어인 차연(差然)을 사용한다. 어쨌건, 차연 개념에 기초하여 데리다는 모든 유형의 현존의 형이상학을 ‘해체'하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데리다의 주장에 의하면 세상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흡사 시간적 공간적으로 다른 존재에 앞선 그 무엇이,
그러니까 우리 삶과 우주의 근본이 되는 어떤 본질이 있다는 주장이 서구에는 옛날부터 근대까지 계속해서 있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신·플라톤의
이데아·헤겔의 이성 등이 그런 예이며, 심지어 같은 탈구조주의로 곧잘 묶이는 라캉의 사유체계에서는 무의식이 현존의 형이상학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데리다는 비판한다. 그는 이런 식의 현존의 형이상학은 폭력에 의해 유지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는 현존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기 위해 특유의 용어와 개념을 개발하는데, 로고스 중심주의(logocentrism)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서 ‘로고스'는 그리스 어의 원래의 뜻인 ‘말'에 더 가깝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말과 글을 비교하면서 말은 진실이고, 글을 말의
반영한 것으로 진실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구두 약속보다 서면 동의를 받아야 안심을 하는 우리들은 좀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리스인들은 말을
하는 순간에는 말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현존'하기 때문에 그 말을 진실로 믿을 수 있지만, 글로 옮긴 것은 (말의 주인이 없으므로) 누구나
달리 해석할 수 있어 글을 불신하였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의 생각과 달리, 말하는 순간에도 사실 말하는 주체가 현존하지 않을 수 있는데, 요즘
전화에서 녹음된 메시지가 그 예이다. 즉, 말과 글은 둘 다 표기방법일 뿐 말하는 주체의 현존과는 상관이 없으며, 어느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경우에 실재하는 진리가 있고, 이에 기초해서 진실을 말한다는 식의 사유방식은 우리에게 뿌리
깊게 남아있다. 예를 들자. 빛과 어둠은 각기 별개의 존재이다. 그러나, 흔히 빛은 현존인데 반해, 어둠은 그 자체로 현존하지 못한, 그러니까
‘빛이 없는' 부재의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로고스 중심주의가 현실 정치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남자와 여자를 예로 들면, 둘 다 실재적 가치이며, 둘은 단지
차이에 의해 관계 맺어지는 대등한 관계임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로고스 중심주의가 개입하면 남자는 현존이고 독립된 개체이지만, 여자는
홀로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남자임이 못된' 부재의 존재가 된다. 여아가 태어나면, 흔히 ‘이왕 태어날 것 하나 더 달고 나오지' 하는
사고방식이 이런 사유의 좋은 예이다. 여아는 ‘하나가 빠진' 부재의 존재인 것이다. 정치적 소수자들이 기존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해
데리다를 인용하는 이유가 이로 어느 정도 설명될 것이다.
/ 송승철 교수(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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