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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본 적 있는 영화- 이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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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6.28  13: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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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적 있는 영화  - 이근화

반쯤 뜬 눈으로 우유팩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흔들거리며 걸어도
모든 게 반 토막으로 보이는 건 아니야

물론 남은 우유를 위해 고양이를 키우는 건 아니지만
저기 아침 창가의 이다, 햇살과 먼지 속에 아무렇게나 찢어진 고양이

나는 쉽게 이다를 잊지만
쉽게 잊혀진 이다는 창문의 높이에 익숙하고
이다는 창가의 이다
장롱의 이다
본질적으로 지붕인 고양이

내가 앉아 있는 나무 위에서의 식사는 즐겁지
내가 앉아 있는 나무의 나뭇가지에서는 새들이 울고 야단이지

가끔씩 나는 검은 비닐봉지에 우유팩을 넣고 흔들거리며 걷지 모든 게 반 토막으로 보여도 좋아

혹은 보이다 말다 해도 나는 보았다고 생각해

 

  눈을 반쯤 떠본다. 혹은 반쯤 감아본다. 정말로 모든 게 반 토막으로 보이지는 않는군. 왠지 대단한 발견 같다. 
 

  하지만 눈을 반쯤 뜨거나 감았을 때 정말로 모든 게 반 토막으로 보이면 얼마나 재밌을까. 아파트도 반 토막, 기차도 반 토막, 햇빛도 반 토막, 당신의 얼굴도 반 토막. 
그건 어쩌면 고양이가 되어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창문과 지붕과 나뭇가지를 날렵하게 옮겨다니며, 하얀 우유를 맛있게 핥으며, 가끔은 햇살과 먼지 속에서 아무렇게나 찢어지며, 고양이 이다는 반만큼, 반의 반만큼, 혹은 반의 반의 반만큼, 섬세한 눈으로 세상을 토막내겠지. 
 

  그리고 어느날 아침 창가의 이다 앞으로, 꺼벙이 구영탄이 검은 비닐 봉지에 컵라면과 초코파이 따위를 넣고 흔들거리며 걸어올 지도 모른다. 그때 고양이 이다는 더더욱 눈을 가늘게 뜨고, 반의 반의 반의 반토막이 난 구영탄을 향해 냐옹.

/ 신지연(시인, 기초교육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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