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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봄눈정한용
이현준 작가  |  skdak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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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7.03  17: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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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 정한용

길은 존재하지 않는 나무속에 있다
겨울 피부 거칠게 패인 상처 위로
막 작은 입을 연다
우리들 가슴 한 모서리
아무도 볼 수 없는 그리운 집 저편으로 봄눈 날리고
안개, 그래, 그 불투명이 깊어진다
늙은 어머니 관절염처럼 무릎이 시려오면
때늦은 편지도 쓰기 어려워 진다
사연은 길지만
눈발이 우리들 말을 지워버린다
흰 나무 빼곡했던 자리에 일렁이는
눈꽃 빈 흔적

  미국에 있던 2년간 내가 즐겨했던 일이 하나 있다. 영어공부를 떠올렸다면, 미안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수업을 빼먹고 어디론가 내빼기 일쑤였다. 툭하면 자전거나 차를 타고 시 외곽으로 도망치던 나는 가끔은 하루 종일 거라지 세일을 찾아다녔다.

  날씨가 좋은 5월이 되면 시내 주택가에도 거라지 세일이 많이 열렸지만 쓸 만한 물건은 드물었고 자연히 시 외곽으로 나가곤 했다. 찾는 이가 드문 농가의 거라지 세일은 정말 흥미로운 물건들이 많았다. 헤드가 진짜 나무로 만들어진 우드 골프채, 수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수제 인형, 물이 빠지고 다 해진 리바이스 청바지 같은 건 흔한 편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살던 아파트의 살림살이도 대부분 거라지 세일에서 구한 것들이었다. 74년에 생산된 내셔널 밥솥(보온이 되지 않아 늘 찬밥을 먹곤 했다), 10년은 됐을 파나소닉 전기면도기, 생활 기스가 한 가득이던 그릇 세트, 인디언이 만들었다는 토기인형 등이 방안 구석구석에 자리했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00피스짜리 그림퍼즐이었다. ‘Eugene'에서 ‘Sweethome'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들린 농가에서 산 물건이었는데, 박스도 없었고 비닐봉지에 조각들만 모여 있어 어떤 그림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조각이 다 있다는 확신에 찬 주인의 말과 단돈 1달러라는 가격에 덥석 구입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각 하나하나를 맞춰가면서 나는 그 그림이 눈 내리는 숲과 한 농가의 풍경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정한용 시인의 ‘봄눈’이란 시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던 난해한 퍼즐그림은 일주일이 걸려서야 완성되었고 난 그 그림을 사랑하게 되었다.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미 서북부에서 그 그림은 내게 고향의 겨울을 떠올리게도 했고, 한국에 두고 온 나의 불투명한 길과 상처를 되짚게 해줬다. 그건 아픔이기도 했지만 내가 눈으로 덮어버린 추억이란 모르핀이기도 했다. 난 가끔 아직도 내가 살던 아파트 거실에 붙여놓았던 그 그림퍼즐을 떠올린다. 오늘처럼 뜻하지 않게 펑펑 봄눈이 내리고, 정한용의 시를 혼자 읽는 밤이면 더욱 그렇다. 이 밤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늦지 않은 편지를, 혹은 마지막 그림 조각을 놓고 있길 나는 간절히 바래본다. 벌써 창밖 라일락의 잎은 푸르건만 내 마음의 눈은 아직도 채 녹지 못하고 있나 보다. 정말 그랬나 보다.     

/ 이현준(소설가, 現 철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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