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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1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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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7.03  22: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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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박상수

어떤 날은 종일 스탠드에 앉아 운동부 애들이 빳다 맞는 것을 보았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막혀 있었다 철문 앞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담배가 떨어지면 문밖의 바람소릴 생각했다 나비로 핀을 꽂은 숏 컷트의 여자애가 머리를 기댔다 사라졌다

등나무 벤치, 오고가는 말들에 파묻혀 있으면 구름이 내려와 어지러웠다 땅에 발을 딛고 잎을 피워 올리는 애들이 많았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언제나 부서진 걸상과 깨진 창문틀, 폐지가 있었고 믿는 건 세계의 일부가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람이 심한 날에는 코스모스도 괜찮았고 다리를 떠는 여자애도 좋았다

경박하게 나는, 옥상에 대해 생각했다 바람 빠진 배구공과 줄이 끊어진 고무동력기 항상 고여 있을 썩은 물, 나는 히히덕거리며 옥상으로 돌을 던졌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강아지 흉내를 내었다 자꾸만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의 소리가 들렸다

 

 

열여덟 살 때 나는 무엇을 했을까. 체조부 아이의 책상은 항상 비어 있었다. 나는 가끔씩 그 아이의 포니테일 머리가 떠올랐고, 다리를 떨며 책을 읽고 도시락을 까먹고는 했다. 나비 핀이 어울리지 않는 숏 컷트의 머리로, 연애 같은 걸 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옥상에는 어떤 일이, 어떤 풍경이, 있었을까. 높고 높은 언덕을 올라 헉헉거리며 교문을 지날 때면 우리는 평평한 세상이 부러웠으므로, 옥상 따위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때 옥상에는 어떤 일이, 어떤 풍경이, 있었을까.
 

햇빛이 찬란한 날엔 햇빛이 가득하고, 비가 오는 날엔 어김없이 비에 젖고 있었겠지. 누군가 히히덕거리며 던진 작은 돌멩이, 어딘가에서 날아온 상처 입은 고무동력기가 이리저리 굴러다녔겠지. 그리고 내 친구는 울었을지 몰라. 옥상 난간에 하얀 실내화를 신고 서서, 처음으로 운동장의 텅 빈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몰라. 

 / 신지연(시인ㆍ기초교육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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