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임단협, 총자본 대 총노동 첨예한 대립
노동계 교섭 성패, 개정 노동법 대비 단체협약안 마련 관건

  사회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최근 「한국노총」의 전국 순회 임금단체협상(이하 임단협)지침 설명회에서 보여준 일선 노조 간부들의 유례없이 높은 관심과 참여는 변화될 노동환경에 대한 현장 노조의 불안감을 잘 드러낸다. 때마침 불어닥친 경기 불황은 노조의 임금교섭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으며, 더욱이 노동법 파문과 맞물려 이번 임단투의 항로가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노조들이 기업의 경영난 심화를 이유로 임금인상의 회사일임이나 임금동결에 합의하는 등 임금협상에 수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작년 3월말 무교섭 타결은 4개사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난 9일 현재 임금인상 결정권을 회사측에 위임한 노조는 현대엘리베이터, 쌍용자동차 등 67개소(백인이상 사업장)에 달하고 있다. 또 3월말 현재 임금을 동결한 기업은 동국제강, LG전자 등 81개사(작년 같은 기간 14개사)에 이르는 실정이다.

  이런 흐름이 확산된다면 특히 교섭조건이 취약한 중소노조는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대기업노조는 이면교섭을 통해 기업복지 등 각종 부가급여를 늘임으로써 임금손실을 상쇄할 수 있다. 그러나 총조합원의 34%(전체 노조 중 85%의 노조)에 이르는 5백인이하 중소사업장의 노동자들과 약 86%에 달하는 비조직 노동자들의 상당부분은 실질임금의 삭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임금교섭의 진행 현황을 보면, 지난 3월까지 평균 임금인상률은 약 2.7%로, 조기타결한 사업장의 통계임을 감안하더라도 양 노총이 제시한 10∼11%대의 인상 요구안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또 지난해 같은 기간의 6%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타결률은 지난해부터 강조되던 기업측의 총액임금동결 주장과 무관하지 않다. 즉 고용안정에 대한 위기의식이 심화되면서 임금과 고용간의 ‘패키지 교섭’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올해 교섭의 성패를 다투는 사안은 임금이라기 보다 단체협상이다. 87년 이후 단체교섭의 쟁점은 임금인상에서 각종 복지 및 노동조건을 포함해 노동강도와 직제개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돼왔다. 이는 노사간의 자율 교섭과 노조의 참여에 기반한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의 정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정부의 개입이 노사관계를 주도하는 핵심적인 변수이며, 참여적 노사관계에 대한 자본의 태도가 여전히 경직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 단체 교섭에서는 개정 노동법을 적용해 노동시장의 유연성 및 노조통제를 강화하려는 자본과 단협투쟁을 통해 개정노동법을 무력화하려는 노조간에 양보없는 협상이 진행될 것이다. 특히 노동법 개정 이후 처음으로 시도되는 이번 교섭의 결과는 향후 교섭의 준거로 작용할 것이며 총자본 대 총노동의 대립 양상을 띄고 있어 노사간 긴장은 어느 해보다 첨예화ㆍ장기화될 전망이다.

  노사간의 치열한 각축이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 개정 노동법의 조항들은 첫째 고용 및 근로조건의 악화가 예견되는 조항들로써 변형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시간 근로제, 정리해고제 등이 있으며, 둘째 집단적 노사관계법 중 파업시 대체 근로 허용, 무노동무임금, 전임자 임금 문제 등은 단체행동권 및 노동조합활동을 제약하는 조항으로 주목되고 있다.

  현재 노동운동은 개정 노동법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단체협약안의 개발을 요구받고 있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장치는 위에서 문제시 한 각 사안에 대해 노사간의 협의 혹은 합의절차를 명시하는 것이다. 그외에 단체협약 모범안의 구체적인 개발과 개별 노조의 특성에 맞는 적용방식을 모색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계에 상급단체 교섭 위임을 포함한 공동교섭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공동교섭은 단위기업의 교섭비용을 줄이고 기업간의 임금격차를 축소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또 업종내 노조들간의 이해관계 수렴과 공동 의제 설정을 위한 노력들은 기업별 노조 노동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시도로써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97년 임단협에서 노동운동이 기대하는 성과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체협약이라는 제도적 장치에 어떻게 공동 교섭의 강점을 활용하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 권현지(노총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