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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내가 쓴 시를초등 4학년 000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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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8.23  11: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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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시를

 - 초등 4학년 000

내가 쓴 시인데
내가 읽을 때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아버지란 시를 쓸 때
나는
연필을 살짝 책상 위에 놓고
노점에서 과자 팔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입 속에서 중얼중얼
"아버지, 아버지......" 부른다.

어머니란 시를 쓸 때
지금쯤 엄만
어디서 일하고 계실까?
점심을
길 한복판에서 잡수고 계실까?
모래 나를 때
큰 돌이
발 위에 떨어지지나 않을까?

나는 결코 울지 않는다.
그러나
시를 읽으면서
내가 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세상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전혀 상반되는 두 개의 개념이 동시에 성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아이러니라고 하거나 모순이라고 하거나 역설이라고 하거나 코미디라고 하기도 하며 리얼리티라고도 한다.


  “시는 누구라도 쓸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쓸 수는 없다”는 말 역시 역설이기도 하며, 코미디이기도 하고, 우리의 삶이며, 동시에 진실이기도 하다.
내가 아껴두었던 시를 공개한다.


누가 쓴 시인지도 모르고, 몇 년도에 쓴 지도 모른다. 다만 이 시를 쓸 당시 이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으며, 내가 한림대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방문교사를 할 때, 학습교재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5년쯤 전에 이 시를 보고서, “아, 나도 이렇게 써야지” 하고 생각한 이후로 감춰두고 나만 보던 시인 것이다.


글만 알면 누구라도 시는 쓸 수 있다. 심지어 글을 몰라도 쓸 수 있다. 그러나 문과를 전공한 이들 중에도, 이 정도의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진짜 시니까.

이게 왜 좋은 시일까? 솔직히 나도 그 명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누구 아는 사람은 내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마치 노래 가사처럼 단순한 구조에, 감정 자체도 흔한 것이다. 누구나 한 번 즈음은 느껴봤을 듯한, 그리고 자연스레 흘려 보냈을 그런 감정!


그러니까 어쩌면 이 시의 뛰어난 점은, 누구나가 겪고 느끼고 자연스럽게 흘려 보낼 그 한 순간을 포크 같은 의식(意識)으로 쿡! 찔러서 고정시켜두었기 때문은 아닐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그냥 흘려 보내는 걸까? 붙잡아두기엔 괴롭고, 생각할수록 더 신경 쓰이고, 딱히 답도 없고, 그리 유쾌하지도 않고, 더구나 초등학생이 두고두고 간직해두기에는 정신건강에도 나쁠 것 같고, 이것 저것 다른 할 일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이 아이는 왜, 남들 다 겪고는 흘려 보낼 보편적인 감정을 가슴 한 복판에 쿡! 찍어서 두고두고 내려다보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지금의 이 감정이, 흘려 보내고 잊어버릴 소소한 감정이 아니라, 단지 우울하고 서글픈 한탄의 순간이 아니라, 보물 같은 놓쳐서는 안 되는 정말 중요한 그런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다시 이 시가 좋은 이유를 정리해보자면 이런 게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봤을 부모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자기 처지에 대한 불안과 슬픔, 우울, 괴로움, 염려 등을 남들 하는 데로 그저 스쳐 지나가게 놔두지 않고, 이것이 평생 내가 지나칠 감정의 흐름 중에서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붙잡아두었다는 것!


내 생각에 이 아이는 앞으로도 쉽게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무엇을 가슴 안에 성공적으로 붙잡아 놨기 때문이다. 자기 가슴 속에, 길 한 복판에서 점심을 잡숫고 계시는 엄마가 매어져 있는데, 대관절 못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좋은 와인은 그 맛만 보고도, 포도의 당도를 알고, 재배 지역을 알고, 그 해(年)를 알며, 그 해(年)의 날씨를 알고, 일꾼의 솜씨와 정성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좋은 시란, 이 아이의 시처럼, 가슴 속에 시밭이 있고, 그 시밭이 어떠한 곳인지 조차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숙성된 시밭에서 자연스럽게 맺힌 그런 시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유목민처럼 마냥 감정을 흘려 보낸 이들은 시를 쓰기 힘든 게 아닐까? 바로 나처럼? 그리고 당신처럼!

/ 김원국 (시인·국문과 2005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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