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6-7줄이 한 문단

한림학보의 요청으로 심훈 선생님의 ‘글짱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됐다. 이번 학기에는 그 동안 ‘문장론’에 비해 다소 소홀히 다뤄져 왔다고 생각되는 ‘문단론’을 중심으로 요령을 전해주고자 연재물을 기획했다는 것이 심훈 선생님의 전언(傳言)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모여 한 덩어리의 글을 이루는 문단에서 알아야 할 여러 노하우 가운데, 그 첫 번째로 ‘열 줄로 줄여라’를 먼저 내보낸다. <편집자 주>

영어로 paragraph를 의미하는 문단은 단락, 또는 절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신문, 잡지 등의 인쇄매체에서 짧은 기사 또는 짤막한 논평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는 paragraph는 몇 줄로 끝나는 경우가 아니면 글쓰기에서 반드시 챙겨야 하는 문장의 집합체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줄과 함께 몇 칸의 들여쓰기로 시작되는 문단은 영어의 경우, 언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을까?

▲ ‘구텐베르크 성경’은 책 안팎의 화려한 디자인과 수려한 채색에도 불구하고 현대 성경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장’과 ‘절’의 구별이 없다. 모든 문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다, 위 아래 문장 사이의 줄 간격 마저 빡빡해 책을 들여다 보노라면 금새 질려 버린다.

수 백 억원에 달한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더 이상의 상세한 가격 정보는 공개되지 않은 ‘구텐베르크 성경’은 흔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서적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 인쇄술의 산 역사이자 근대 문명의 시발점으로 꼽히기에 천문학적 가치를 자랑하는 이 책은 그러나, 읽는 이의 시각에서 놓고 볼 때, 그야말로 거품만 잔뜩 낀 가격의 작품이기도 하다. 책 안팎의 화려한 디자인과 수려한 채색에도 불구하고 현대 성경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장’과 ‘절’의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문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다, 위 아래 문장 사이의 줄 간격 마저 빡빡해 책을 들여다 보노라면 금새 질려 버리는 것이 ‘구텐베르그 성경’의 진실인 것이다.

영문법과 성경의 전문가가 아니지만, 인터넷을 뒤져가며 필자가 나름대로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성경에서 문단은 1873년에 수정 발간된 ‘제임스 왕의 성경’을 통해 처음으로 그 모양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성경을 통해 드러난 서양 문단의 역사는 이제 한 세기를 막 넘긴 셈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언제부터 한글에서 문단 나누기가 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보를 얻지 못한 실정이다. 필자의 게으름에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하며 그저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청할 뿐이다.

사실, ‘생각 덩어리’ 또는 ‘생각 묶음’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는 문단은 눈 앞에 펼쳐 보이는 장면을 바꿔줌과 동시에 읽는 이의 숨결을 고르고 지루함을 덜어주는 재간둥이이다. 이러한 문단은 ’글쓰기, 잘라서 읽으면 단숨에 통달한다’의 지은이, 장진한과 후타쓰기 고조에 따르면

1)     시간, 장소, 장면이 달라질 때
2)     인물, 상태, 동작이 달라질 때
3)     사건, 현상이 달라질 때
4)     생각이나 논점, 주장이 달라질 때
5)     서술문에서 대화문으로 바뀔 때나 말하는 사람이 바뀔 때
6)     긴 인용문을 넣을 때
7)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싶을 때

사용되어지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듯 여러 경우를 일일이 외우기 보다 문단 자체를 카메라 촬영 대상정도로 바꿔 생각한다면 문단의 사용이 더욱 쉽게 다가가리라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생각이다. 즉, 같은 장소, 같은 시간, 또는 같은 사물을 여기 저기서 다른 각도로 촬영할 때는 결국 한 장면에 속하지만,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또는 다른 사물의 모습을 비추려 하다면, 씬 (Scene)을 바꾸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수준의 문장 길이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 예를 들어, <문장력 향상의 길잡이>라는 책을 쓴 서정수는 원고지 3~4장을 가장 이상적인 단락의 분량으로 정의하고 있다. 2백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볼 때, 원고지 3~4장이면 거의 A4용지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니, 결코 만만찮은 길이인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루할 만 하면 바꿔줘야 하는 ‘문단’의 경우도 문장론에서 소개했던 바와 같이 ‘단단익선’ (短短益善)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진욱과 김동기가 조사한 ’20세기의 국문 소설 및 수필의 문단길이’를 살펴보면, 20세기 초,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은 문단 문단이 매우 길어 글의 호흡도 상당히 길었던 반면, 광복 후 나온 박경리의 <토지>는 열 줄 정도, 90년대 작품인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예닐곱 줄이 한 단락에 불과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짧아지기는 문장이나 문단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가장 짧은 문단은 몇 문장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이론상으로는 한 문장, 아니 한 단어도 충분히 한 문단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서는 소화해 내기 힘든 법. 참고로, 필자의 경우에는 가급적 문단 나누기에 있어 열 줄을 넘기지 않으려 하고 있다. 꼭, 숫자 열에 의미가 있기 보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묵독할 경우) 편해 보여서지 별다른 뜻은 없다. 중요한 사실은 호흡이 길어진다 싶거나 조금이라도 지루해진다 여겨질 때, 가차없이 ‘엔터키’를 치는 센스일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