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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참깨를 털면서
이현준 작가  |  skdak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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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9.02  10: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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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김준태 시인이 이 시로 등단한 것이 1967년이니, 쓰여진 것은 아마 이것보다 이른 시기였을 것이다. 흔히 <참깨를 털면서>라는 그의 첫 시집이 나온 1977년을 이 시의 발표년도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옳지 않다. 물론 시대상황을 느낄 수 없는 이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2006년에 쓰여졌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나 역시 시의 오래됨을 모르고 이 시인도 나와 비슷한 연배이겠구나 하고는 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참깨를 터는 모습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휴대폰으로 티브이를 보는 시대가 되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가을이 되면 참깨를 거꾸로 들고 타닥타닥 막대기질을 하는 것이다. 대충 모가 자라면 대충대충 심어놓는 들깨와 달리, 참깨는 심을 때부터 귀족대접이다. 일일이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뚫어 파종을 하고 수확을 위해 말릴 때도 예쁘게 깻단을 만들어 세워놓는다. 인근 밭의 흙바닥에 누워 제 몸을 말리며 몸살을 하는 들깨가 보면 눈꼴이 시릴 법도 하다. 더구나 바닥에 넓게 비닐을 펴고 뭉텅이로 도리깨질을 당하며 수개월을 품고 있던 깨를 토악질해야 하는 들깨 옆에서, 모가지라도 떨어질까 싶어 토옥 톡 막대기로 안마질 당하는 참깨는 귀하고 귀한 존재다. 참깨 한말 가격이 들깨의 세배가까이 되는 걸 보면 농부의 땀의 무게가 어느 정도는 책정되는 듯도 싶다.

암튼, 이렇게 애정을 쏟은 참깨를 터는 일은 시인의 할머니에겐 어느 일보다 소중한 일이었을 테고, 시인에겐 그저 새로운 경험거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에겐 매년 반복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인 깨 털기가 시인에겐 자신을 시인으로 등단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니 참이나 재미스런 일이다. 매년 어머니의 텃밭에 가서 들깨와 참깨를 터는 내겐 그러한 계기가 못되었다 생각하니 약간은 부아도 나지만 누군가의 시를 다른 이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것으로도 여간 만족스럽지 않다. 좋은 시인의 좋은 시를 읽을 수 있어 기분 좋은 날이다.

/  이현준(소설가, 現 철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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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 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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