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글을 올립니다. 건강하신지요. 하늘이 너무 청명해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학교가 생각나더군요. 선생님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가 3학년 1학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 그때도 날이 이렇게 좋았거든요. 그 수업시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나면서 선생님 얼굴이 떠올라서 이렇게 메일을 올립니다. 학생 때와는 다른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처음에는 좋았는데 점점 학생이라는 신분이 그리워집니다. 회사에서 나름대로 영역을 확보하고 저만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다 보니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요즘도 강의 하시죠? 마지막 학기에 언론 수업을 듣지 못하고 졸업을 한 게 참 아쉽더라구요. 비록 제가 언론쪽으로 진로를 잡지는 못했지만 복수전공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분야를 공부한 것이 사는데 참 많이 도움이 됩니다. ^^ 선생님 조그만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책을 읽고 싶은데 도움이 될만한 책 몇 권만 추천해주시면 안될까요? 요즘 책을 너무 안 읽는 것 같아서요. 추천 좀 해주세요.

2006년 9월 6일, 권XX 올림.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라 그런지 더욱 기쁘기도 하고요. 그렇잖아도 가끔 농구할 때면 농구 잘하던 XX군을 그리워하곤 하는데 XX군 역시 내 생각을 해주었다니 고맙군요. 요즈음은 가을 학기가 막 시작된 지라 다시 노란 병아리들을 데리고 수업 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 참, 책에 대한 추천을 부탁했는데 나로서는 XX군의 관심 분야가 어느쪽인지 잘 모르기에 우선 망설여질 수 밖에 없네요. 중요한 사실은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책을 골라야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해서, 책 몇 권을 소개 시켜주기 보다, 책 고르는 요령에 대해 한 마디 건네줄까 합니다.

우선, 힘들더라도 주말에 '대형서점'으로 한번 나가보도록 하세요. 아침 일찍 갈수록 더 차분하게 책을 고를 수 있을 겁니다. 모르긴 해도, 한번 가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가운데 하나가 그곳에 있을 겁니다. ^^

일단 서점에 가면, 흔히 매대로 알려진 진열대에 있는 책들을 구간별로 돌면서, 전시돼 있는 책들을 대충 살펴보도록 하세요. 그 가운데에서 참신한 제목, 강렬한 제목, 궁금한 제목들은 사냥 대상 1순위에 올려 놓는 게 좋습니다. 으레 그렇듯이 센스가 있는 작가가 펴낸 책은 제목부터 틀리니까요.

다음으로 책의 서문을 읽어보도록 하세요.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웬만한 책의 수준이 이미 서문에서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서문이란 결국 해당 책의 ‘자기 소개서’나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런, 서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면, 나의 경우에는 일단 그 책에 최소한 B+이상의 합격점을 줍니다. 반면, 지루하거나 감사 인사만 가득한 서문, 책 내용만 장황한 서문, 세상에 대한 넋두리로 점철된 서문은 가급적 샤냥 리스트에서 제외하도록 하세요.

세 번째 요령은 책의 '목차'에 숨어 있습니다. 목차는 작가가 책과 관련된 주제를 어떻게 정리하며 풀어가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작가만의 분류 방식입니다. 때문에, 관련 주제에 대한 해당 작가의 인식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고루한 제목, 별볼일 없는 목록이 나열된 목차는 일단 작가의 주제 분류 수준이 그렇게 창의적이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반대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목차들, 한번도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내용들, 참신한 단어들로 구성된 소제목들은 해당 책의 저자가 다양하고 깊이 있는 생각들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목차 가운데에서 가장 궁금하거나 제일 재미있을 것 같은 곳을 골라 해당 부분을 펼쳐놓고 읽어보도록 하세요. 이를테면, 최종 점검인 셈이죠. 만일, 해당 부분의 내용 역시 기대만큼 알차다면, 두말 할 것 없이 그 책을 사냥하도록 하세요. 한 가지의 팁을 덧붙이자면, 가급적 글만 나열된 책보다는 삽화나 사진, 이미지 등이 적절히 가미된 책이 읽기에 훨씬 수월하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 팁이면 몇 권의 책을 고를 준비로 충분할까요? ^^

추신. 나중에 책을 사게 되면 간단하게 나마 책 제목과 고른 이유 등을 알려주면 고맙겠네요. 그래야 구독 의지도 다지고 실제로 엉덩이를 들어 책을 사러 갈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

그럼,,, 조만간 또 다른 연락을 기다리며…

2007년 9월 7일 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