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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뭐했노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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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9.20  20: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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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했노

                                                           장혜랑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어떤 말을 맞춰도 척척 잘 맞는 장단
내겐 왜
뭐했노, 뭐했노, 뭐했노로 들릴까
빠르게 느리게도 아니고
허구한 날 벽창호같이 다그치는
하나 둘 놓쳐버린 마음의 빈 집을 두드리는 소리

창밖 잠시면 녹고 말 안타까이 쏟아지는 눈발까지
날아 봐 나처럼 날아 봐
나는 막다른 골목 궁지에 몰린 듯
생각지도 않은 궁색한 대답을
세탁기 뚜껑을 열고 외친다

밥했다 애 키웠다 울었다
웃으며 삽시다란 세미나에서 간간이 섞는
와이담 소리에 배쥐고 웃은 적도 있다

 


  보통의 사람은 노력하는 법이다. 문제 하나를 더 맞추기 위해서, 칭찬 받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건강해지기 위해서, 성적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더 잘 놀기 위해서 노력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이기기 위해서, 이성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은연 중 노력할 수도 있고, 작심하고 노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얼마 전, 한림대 철학과를 졸업 후, 대한항공 스튜어디스에 합격하였으나 그것을 포기하고, 하나은행에 취업하여, 명동점에서 근무 중인 한 여성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분은 요즘 ‘도피결혼’을 꿈꾼다. 평일 주말 구분도 없이 하루 종일 시내 쇼핑이나 하고, 백화점 문화센터 수강 후에 스타벅스에 모여 수다나 떠는 자기 또래의 젊은 주부들이 부러운 것이다. 물론 이 젊은 주부들이란, 돈을 버는 능력이 뛰어난 남편을 만나 결혼에 성공한 그런 주부들이다. 사실 그런 주부가 될 수 있다면, 나도 다음 세상엔 꼭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만 행복하면 된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살건, 내가 느끼는 나만, 내가 바라는 나로서, 행복감을 스스로에게 펌프질 해 댈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비교가 시작되니까. 비교 우위를 통해 느끼는 행복감이야말로, 가장 쉽고 간단하게 획득할 수 있는 행복감이기 때문에. 나는 가끔 살긴 사는 건지 모르겠다 싶을 때, 성심병원 응급실 복도에 혼자 앉아 있곤 했다. 그러면 피를 철철 흘리며 사고 환자가 들어오거나, 누군가 마침내 죽거나, 늙은 노인이 혼자 보험증 챙겨 와서는 익숙하게 들어 누워 앓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안도감을 얻는 것이다. 난 최악의 상태는 아니라고.

  그런데 또, 이런 식의 만족감이란 금방 마취가 되기 마련이어서 곤란하다. 지방대학생들은 취업한 이들을 부러워하고, 하나은행 직원으로 취직한 전(前)지방대학생은 여유롭고 한가한 주부들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이제, 여유롭고 한가하게 자신의 삶을 보낸 주부로서 위의 시를 다시 읽어보자.

  시 속 주부는 딱히 눈에 띄는 괴로움은 없다. 남편회사가 부도가 난 것도 아니고, 애들이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보증을 잘못 선 것도 아니고, 누가 죽어가는 것도 아니다. 직접적이지 않은 막연한 괴로움이다. 하지만 일단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단계까지 왔다면, 이 막연한 괴로움만큼 성가신 괴로움도 없다. 왜냐하면 딱히 해결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주부의 경우, 지난 자신의 삶, 자체가 괴로움인데 어쩌란 말인가. 울거나 웃을 수밖에... 때문에 시의 마지막 연, 마지막 행이 ‘와이담 소리에 배쥐고 웃은 적도 있다’이며, 마지막 연 첫 행의 끝이 ‘울었다’인 것이다.

  이성친구가 없을 경우에는 너무나 이성 친구를 원하게 되고, 막상 이성 친구를 갖게 되면 평소 하고 싶던 행동에 제약을 받는 일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일부 남성중에는 ‘여자 친구를 찾아다니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여자 친구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여자 친구와 어떠어떠한 과정을 만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 난 여자 친구가 있어, 그러니까 여자에 신경 쓰기보다 내 일에 집중하자, 는 그런 마음이다. 이 경우에 이 여자 친구는, ‘세상 하나뿐이 내 sos씨’가 아닌 ‘당신의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라는 확인증에 가깝다.

  어쩌면, 시 속의 이 주부는 남편에게 있어서 그런 존재로서의 아내일지도 모른다. 시속에 드러나지 않는 남편은, “나는 이제 아내가 있어, 그러니까 여자나 결혼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내 일과 내 삶에 전념해서 성공하자!”고 생각하는 남편일지도 모른다.

  부부라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얼마간 희생하고 함께 무엇을 이루는 것을 지향하는 조직인데, 이 주부가 뒤늦게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은, 자신의 거울인 남편은 자신의 삶을 그다지 포기하지 않고 가꾸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그래서 상실감을 느끼고, 상실감의 자리를 들여다보니 가족이나 부부라는 이름 밑에 방치된 자신이 목격된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지금 막 백화점에서 문화강좌 수강을 마치고 푸드가든에서 점심을 때리고 계신 여유로운 주부님들은 훗날, 이 주부와 같은 괴로움에 직면하지 않을까? “나는 뭘했지? 그래, 갤러리아백화점도 가고, 롯데백화점도가고, 신세계도 가고, 현대도 갔다, 나는 이것도 샀고 이것도 먹었고 저기서 저것도 주문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금융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전(前)지방대학생인 여성이 계시고, 또 이 분의 직업을 부러워하는, 취업 걱정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지방대학생들이 계시고, 이 지방대학생들이 술 마시는 새벽에, 서랍에서 보험증 꺼내서 까마귀처럼 기어 홀로 성심병원 응급실로 걸어 들어오는 노인들이 계시고, 그들을 보며 겨우 안도하던 나도 있고...... 우린 다들 노력하며 산다.

/ 김원국 시인 ,  국문학과 2005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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