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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아버지의 유산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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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10.26  16: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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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 - 문정희


비밀이지만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폐허 수 만평
나 아직도 잘 지키고 있다
나무 한그루 없는 그 땅에
때때로 태풍 불고 토사가 생겨
남 모르는 세금을 물었을 뿐
슬픔의 매장량은 여전히 풍부하다
열 다섯 살의 입술로 마지막 불러 본
아버지! 어느 토지대장에도 주소가 없는
페허 수 만평을 남기고
빈 술병들만 야적해 두고
홀연 사라졌다
열대와 빙하가 교차하는 계절풍 속에
비밀이지만
아버지가 남긴 폐허 수 만평
나 아직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평생을 써도 남을
일용할 양식 거기 넘친다

 

 


  이번 호는 추석 특집이다. 추석에 대해서 딱히 좋았던 기억은 없다. 그건 역시나, 억지추석이었던 까닭이다. 아마 갓난아기 때부터 빠짐없이 추석이면 큰집으로 내려갔던 것 같은데, 그 갖은 고생 끝의 귀경에 따르는 ‘메리트’가 내겐 없었던 것이다. 귀뚜라미 좀 울고, 별 좀 쨍쨍거리고, 거미가 잔뜩 있고, TV는 잘 나오지 않고, 먹을만한 건 식혜 정도? 게다가 시골집에서 키우겠다고 데려간 나의 개 똘똘이는 어디를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먹었겠지. 여기까진 초등학교 기억.


  중고등학교 때. 추석이면 늘 부러웠던 녀석들이 큰집 내려가지 않는 친구들. 서울은 추석이면 텅텅 비어서 신비롭고, 학교 가지 않아 여유롭고, 극장 같은 곳도 한가하여 즐길 만하지 않은가. 게다가 용돈도 두둑이 받아서들 다닌다고 하니.


  그러던 것이 추석이고 시골집인데, 지금 나이 쯤 되니, 그것이다. 유산. 선산이라든지, 대대로 내려오는 땅이 있다든지 그런 것을 기대하게 된다. 혹, 그런 것이 없다 하더라도, 나의 아버지가 내게 유산을 물려주신다 치면 추석만큼 적당한 날도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스무 살 이후로 추석이면, 빠짐없이 스스로 기꺼이 시골집을 향하고, 올핸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지 않으실까? 기대하고는 하는 것이다.


  잔치 좋아하는 우리나라 한국에서, 아마도, 가족들끼리 벌어지는 잦은 잔치 중 하나가 재산다툼잔치. 그것을 나 또한 기대하였던 것인데, 여직꺼정, 기대해도 좋을 기미가 없다. 어쩌면, 아, 아버지께서 기대함을 허락하신다면, 종합보험금 정도일까?  


  위의 시속 화자는, 나로서는 너무도 부럽게도, 유산으로 ‘폐허 수 만평’을 받는다. 아무리 폐허라지만 여러분들도 부러울 것이다. 추석은 사실, 무언가를 잔뜩 거둬들여 넉넉한 때를 즐기는 명절이고, 이렇듯 때가 넉넉하다면 내게도 뭔가 떨어지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추석- 하고 발음해 보면, 제법 가슴이 따스하고, 뭔가 예쁨 받는 듯 하고, 세상은 배부른 황토 빛인 것 같고, 두근두근함을 허락 받을 듯한 것이다.  


  이 시에서도, 제 아무리 티를 내지 않고, ‘비밀이지만’이라고 내숭을 부리지만, 시속 화자는 분명, 두근두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비록 ‘폐허’일지언정 유산을 받았다. 어때, 부럽지? 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독자는, 부러워하면 된다. 그리고 더 괜찮은 유산을 받았거나 받을 듯한 이들은, 그것을 시 쓰면 된다.


  그러므로 이 시는, 추석에 대해 능동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일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저 때 되면 오는 명절에서, 내겐 너무 00한 추석, 정도로 개입을 한 번 해보면 어떨까?


  사실 추석은 가족, 식구들을 위한 날이다. 가족과 식구는 대를 이어 이야기를 전하는 관계이다. 그 이야기꺼리가 될 만한 것들이 일종의 유산일 지도 모른다. 유산을 받은 시인은, 시를 썼다. 제목도 ‘아버지의 유산’이다. ‘유산’이라는 말에 조금 더 관대한 해석을 허락해준다면, 유산을 받은 시인이 아버지를 위해 쓴 이 시도 유산이다. 그의 독자들을 위한 유산일수도 있고, 그의 가족들을 위한 유산일수도 있고, 혹은 이미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를 위한 유산이기도 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면, 내게도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었음’이 남는다. 누군가에게 유산을 주는 것은, 그로부터 유산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 이 ‘폐허’에 대한 감상, 회상, 감사함, 정도를 받을 수 있다면 제법 괜찮은 거래이지 않은가.


  추석은 매우 강렬한 상징이다. 추석은 계속해서 삶에 영감을 준다. 그것은 비단 시인에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영감을 준다. 추석이면 대부분 sentimental 해지고는 한다. 토성을 한 바퀴 걷는 것처럼, 건조하게 보내기 일쑤인 1년 중, 추석은 일종의 구덩이이며, 한 번씩 빠졌다 기어 올라오면서 다시 힘을 얻는 그런 장치물이다.


  시속 화자는 ‘슬픔의 매장량’이 풍부한 유산으로부터 일종의 영감을 받고 있다. 이 영감은 화자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이 유산, 이 감정은 ‘평생을 써도 남을 / 일용할 양식’이라고.


  삶에 대해, 지나온 길과 지나갈 길들에 대하여 생각할 구덩이를 준다는 것, 그러한 때를 준다는 점에서 이 시는 추석과 어울린다. 왜 우린 추석이면, 늘 해왔던 만남과 늘 해왔던 소리들을 반복하는 것일까. 추석 자체가 옛사람들로부터 물려받은 일종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번 써버리고 마는 유산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자신이 쓴 뒤에 자신의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주어도 넉넉한 그런 유산.    


  그러므로, 이번 추석에도 나는 뭔가를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추석은, 뭔가를 기대해도 좋을 날이기를 원한다. 평소에 너무 기대하지 못하는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지. 받고 나서는, 감사함을 잊지 말자. 받은 것을 방치할지언정, 잊지 말자. 잊을 것 같으면, 그 전에 나눠주자.

/ 김원국(시인, 국어국문과 05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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