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항쟁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제주 4·3항쟁의 의미와 그 경과를 시리즈로 싣는다 / 편집자


‘제2차 미·소 공동위원회(47. 5. ∼ 47. 8)’가 결렬되면서, 미군정은 자신들에게 지지력이 높은 유엔을 통해 38선 이남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강행한다. 이같은 단선·단정의 결정에 대해서는 이승만과 김성수가 이끄는 한민당만이 찬성 했을 뿐, 김구와 김규식이 이끄는 우파와 중도파 정당에서도 ‘조선을 영구히 분단화시키는 것’이라며 맹렬히 반대한다.

특히 남로당과 민전에서는 이 결정에 즈음해 단선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전국적 차원의 ‘2·7구국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그 후 전국적으로 검거 바람이 불어닥쳤다. 이미 제주경찰의 수뇌부는 타지역에서 들어온 경찰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거기에 서북청년단의 횡포까지 겹쳐 일단 경찰에 연행된 자는 초죽음이 됐다. 그렇지 않아도 전 해(1947년)의 3·1시위운동 이후 이리저리 쫓기던 청년들은 대거 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제주도민들은 ‘가만히 있다가는 나도 맞아죽을 거 아니냐’는 공포감과 함께 미군정과 경찰·서북청년단 등 우익청년단에 대한 불만이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다. 48년 3월, 5·10 단선을 앞두고 좌파세력(남로당 제주도당 및 좌파조직)과 제주도민들은 우리민족이 두개로 나뉘는 것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명백히 하기 시작했다. 좌파세력은 선거인등록을 저지하는 것이 단선을 막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해 이에 대응하기 시작했고, 도민들은 선거인등록거부 및 선거거부의 의사를 표명했다.

1948년 4월3일 새벽 2시, 수많은 오름(岳,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기생화산)에 봉화가 오르는 것을 신호로 1천 5백명의 무장대들이 행동을 개시해 제주도내 24개 경찰지서 중 11개를 습격함으로써 제주 4·3은 시작됐다.

그들이 발표한 호소문에 그들은 무장투쟁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민중 생존을 위한 자위적 공격이며, 둘째, 단선 ·단정 기도를 저지해 통일조국을 세우기 위한 투쟁이며, 셋째, 제국주의로부터 민족해방을 달성하려는 자주화 투쟁이라는 것이다. 통일세력들과 민중들이 결합한 제주항쟁은 자위적이고,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초기에는 성공적이어서 미군정을 당황케 했다.

4월27일, 미군정은 국방경비대 제9연대를 진압작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9연대장인 김익렬은 진압에 앞서 유격대에 협상을 제시했다. 그리하여 김익렬과 유격대 총지휘자 김달삼은 구억국민학교에서 4월28일 평화회담을 갖게 되고 서로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선에서 유격대를 해산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차츰 전투가 줄어들고, 귀순자들도 많아져 갔다. 초기의 귀순자들은 노인이나 아이들에 불과했지만, 오랫만에 제주도에 평화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5월1일에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제주읍의 오라리를 습격하여 방화, 소위 ‘5·1 오라리 방화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틀 뒤인 3일에는 귀순자 2∼3백명이 드루스 대위 인솔하의 미군 2명과 9연대 군인 9명에 의해 오라리를 거쳐 비행장의 임시수용소로 호송되고 있었는데, 돌연 경찰 50여명이 중기관총과 카빈총을 난사하며 이들을 공격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두 사건은 평화회담이 깨어지게 되는 촉매제로 작용하게 한다. 처음 이 사건은 유격대에 의한 공격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조사에 의하면 미군정에 의한 조작으로 드러났다. 더우기 미군정은 그날 일어나는 상황을 헬기로 공중 촬영, 무성기록영화(영화명 ‘제주도 메이데이’)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선전하는데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 필름은 현재 ‘미국립기록보관소’에 보관돼 있다.

이처럼 미군정과 경찰측은 평화회담을 무산시키고, 국제법상 금지된 초토화 작전을 실시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미군정이 김익렬로 하여금 국제법상으로 금지된 초토화 작전을 강요했다는 사실이다. 김익렬은 그의 유고록에서 ‘초토화 작전을 실시하라, 임무 완료 후 문제가 생기면 미국에 가서 살라, 10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한다. 결국 미군정은 수만의 제주도민의 목숨을 돈으로 흥정했던 것이다. 김익렬이 이러한 작전을 거부하자 즉시 그를 퇴임시키고 연대장을 박진경으로 바꾸어 초토화 작전을 실시 했다. 문제의 이 오라리 방화 조작사건은 미국의 실체가 드러난 사건으로, 이후에 실시되는 무차별 강경진압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계략인 셈이다.

5·10단선이 임박하자 제주도 전역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무장대는 선거사무소를 습격하고 사무원들을 납치하기도 한다. 결국 5월10일의 단선에서 북제주군의 2개 선거구에서는 투표율 미달로 선거가 무효화되는 전국 유일의 사태가 벌어졌다. 단선을 반대했던 해변마을 주민들은 선거 전날 밤, 투표를 거부하기 위해 이불 등을 짊어지고 산으로 올라갔다가 뒷날 선거가 끝난 후에야 돌아왔다고 기억한다. 그만큼 단선에 대해서는 도민 전체가 부정적이었다. 5·10단선의 무효화는 미군정과 반통일 세력에게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유엔조선위원단의 감시 하에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던 미군정측으로서는 국제적으로 그들의 정당성에 훼손을 입게 된 엄청난 사건이었다.

반면 무장대와 제주민중들에게는 통일정부에의 열망이 일정 부분 수렴되는 쾌거였다. 그러나 항쟁의 이러한 부분적인 승리는 그 후 군경의 대토벌과 그로 인한 제주민중들의 대학살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주한임시군사고문단(PMAG)의 자문 아래 군경합동의 대토벌과 학살작전은 단선 직후부터 다음해 5월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가 해체될 때까지 다섯 차례로 나뉘어 진행됐다. 이는 ‘제주도 전도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러 30만 도민을 한꺼번에 태워 없애 버려라’라는 당시경무국 지도부의 말대로 무차별 소탕작전과 유혈진압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10월19일의 여순항쟁의 발발은 항쟁의 파급 효과를 두려워한 미국과 신생 정부가 대학살을 촉발하는 요인이 됐다. 군경은 무장대와 중산간 마을 주민과의 연계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중산간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해변 마을로 이주시키는 소개작전을 전개한다. 또 소개 - 방화 - 처형으로 이어지는 소위 ‘민간인 대량살육작전’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인명 피해는 물론 제주도의 1백69개 마을 중 1백30개 마을이 불태워진다.

이 무렵부터 토벌대의 공격은 민중에 대한 집단학살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록상 첫번째 집단학살은 48년 10월27일 애월면 고내리에서 발생했다. 그 전날 이곳에서 유격대와의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토벌대가 그 보복으로 1백여 명의 주민을 신작로에 세워놓고 일제사격을 가한 것이다. 이처럼 집단학살은 교전 중의 적을 사살하는 것이 아니라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주민을 향한 무의미하고 무자비한 보복학살의 형태를 띤다. 11월13일에는 애월면 소길리 원동마을을 불태우면서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48년 음력 12월18일, 19일 이틀간에 조천면 북촌리에서 주민 5백여 명이 집단학살 당했는데, 이때 마을 남자 대부분이 죽어 이 마을은 한때 무남촌(無男村)이라 불렸다. 48년 10월부터 다음해 봄까지가 가장 많은 주민들이 학살된 시기이다. 최근 발굴된 자료(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에서 1949년 4월1일자에 작성한 좧제주도 사태좩)에 의하면 희생된 주민 중 최소한 80%가 군경토벌대에 의해 학살됐음을 미군정 스스로가 밝히고 있다. 통일조국을 갈망했던 제주민중들의 이상은 지워지고, 그 지워진 자욱 위에 지속적인 토벌과 예비검속, 6·25전선으로의 반강제적 투입, 국가보안법의 제정과 연좌제가 덧칠해져 최근까지도 끈질기게 제주인들은 숨통을 졸리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엄청난 사건이 왜 지금까지도 철저히 은폐되고 그 진상이 왜곡돼 왔는가. 그 원인은

첫째, 단선을 거부한 제주민중들을 학살한 책임이 미국과 단정세력에 있고, 그들이 사실상 최근까지도 지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향된 반공이데올로기만을 앞세우고 그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해 왔던 것이다. (비슷한 예로 대만의 1947년 2·28 대학살을 상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학살사건은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중국 본토에서 패퇴해 대만에 자리를 잡으면서, 대만 원주민을 대량 학살한 사건이다. 민주화 운동 세력에 밀린 대만정부는 최근에야 그 진상을 조사하고 희생자에게 보상을 약속했다.)

둘째, 제주항쟁 이후 그 진상을 규명할 주체를 형성하기 어려웠고, 도민들 모두가 생존의 길로 나서는 일이 더 시급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제주항쟁은 40여년 세월 동안 귓소문이나 관변자료 등으로만 전해지다가 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논의와 연구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4·3에 관련된 책자와 논문과 여러편의 증언집이 발표됐다. 그리고 제주 4·3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최초로 민간단체에 의해 시행되기 시작했는데 1989년 5월에 출범한 <제주 4.3연구소>가 그것이다. 또 1988년부터 10여년간 신문연재를 통해 4·3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한 제민일보의 ‘4·3은 말한다’는 일본어판으로도 출간해 4·3연구의 확산에 공헌을 하고 있다. 제주항쟁의 진상은 규명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마을 단위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를 조사해야 한다. 그 후 일반 연구자들의 참여와 더불어 역사적 진실을 복원해내야 할 것이다.

한가지 고무적인 것은 94년 4월 제주도의회에서 제주도 전역에 걸친 피해조사(1차)를 벌인 가운데 1만4천명의 피해자 신원을 확인했다. 그러나 조사가 미흡한 지역이 많아서 2차· 3차의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1995년 도의회 차원에서 도의회의원 7명을 정수로 하는 ‘4·3 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 이를 근거로 국회 차원의 [4·3특별법]을 제정해 제주도민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국가가 보상을 해야 한다. 또, 희생자들을 국가적으로 위무하기 위해 위령탑을 세우고, 후손들에게 항쟁의 역사적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공원조성 및 박물관 등을 건립하여 학습장으로 삼아야 한다.

4·3이 일어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있어서 50년이 아니라 5백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 증언채록을 하다보면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 당시 직접적인 피해자들이 지금은 고령이 됐고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다. 더 이상 방관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4·3진상규명의 과제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고, 그것은 역사를 후손에게 바로 알려야 한다는 우리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38선이 그어지지 않고 남북이 분단되지 않았다면 4·3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이러한 의문은 항시 우리곁을 맴돈다.

이것은 남북통일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1998년은 비단 4·3항쟁 50주년을 맞는 해뿐만 아니라 역대정권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정부가 출범한 해이기도 하다. 현 정부에 적극적인 4·3해결 방안을 기대해 본다는 것은 우리들의 과욕일까?

/ 오금숙 (4·3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