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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짱] 제목은 글 내용 알리는 얼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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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제목 중 ‘요약형’은 가장 무난한 모범생
제목 하나로 20만 명 더 모은 ‘기네스 펠트로’
‘지구를 지켜라’ (2003) vs.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2002)
필자가 80년 국내 영화 사상 단연 첫 손가락에 꼽는 ‘지구를 지켜라’는 흥행면에서 별 재미를 못 누렸던 실패작이었다. 웬만한 국산 영화들이 1백만을 훌쩍 뛰어 넘는 요즘 세태에 3주 동안 6만5천명을 동원한 것이 고작이었다. 결국, 패인을 놓고 다소 유치해 보였던 영화 제목이 한참 동안 구설수에 오르고야 말았다. 반면, 흥행과는 인연이 없어 보였던 미국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는 같은 기간 동안 무려 40만의 관객을 동원하는 A+급 성적표를 선보였다. 원작 제목이 ‘천박한 할’ (shallow Hal)이었고, 일본에서의 개봉 제목 역시 ‘사랑스런 로즈마리’로 매우 고루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본다면, 제목 하나로 20만 관객은 더 끌어 모았다는 것이 필자의 B급 견해다.
지난 주, ‘제목’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배의 고정 항로를 잡아주고, 자신의 현 위치를 끊임없이 알려주는 나침반처럼 제목도 글쓰기에 있어서 마찬가지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제목’의 역할을 ‘나침반’으로만 한정 지을 수만은 없다. 앞서 소개한 영화 제목처럼 독자들의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갈고리 역할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의 글이 ‘무제’(無題)냐 ‘유제’(有題)냐에 따라 글에 대한 독자—대학생들의 경우, 주로 교수가 되겠지만—의 반응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서, 이번 주에는 자신의 글과 관련해, 뽑아볼 수 있는 제목들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언론사의 경우에는 제목을 크게, 객관적 제목과 주관적 제목 등 두 종류로 나누게 마련이다. 객관적 제목의 경우에는 사실을 축약해 전달하는 ‘한국 대표팀, 월드컵 4강 진출’과 같은 ‘요약형’과 히딩크 감독의 "아직도 우리는 배고프다"와 같이 취재원의 말을 딴 ‘인용형’이 있다. 그러나, 인터뷰 대상자가 존재하지 않는 서평, 작문, 에세이나 기타 보고서의 특성상, ‘인용형’보다는 ‘요약형’이 더욱 잘 맞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요약형이 일종의 모범생과 같은 인상을 준다는 것. 글의 내용을 잘 요약한 경우, 못해도 80점은 주지만, 왠지 튀거나 창의적인 느낌이 없는 탓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시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4가지의 논제에 대해 고민한 바 있다.
‘한국적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성장이 먼저인가? 분배가 먼저인가?’
‘한류 열풍은 일시적 현상인가?’
‘북한에 대한 햇볕 정책은 지속돼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부모세대보다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 가운데, 첫 번째 논제에서 여러분들이 각각 글쓰기 전에 내린 결론이 있을 것이다. 만일 성장론자라면 왜 성장이 분배에 앞서야 하는지, 또, 분배론자라면 왜 분배가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와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약형 제목에서는 그 ‘이유’나 ‘배경’이 반드시 제목으로 연결돼야 한다. 예를 들어, 성장이 먼저 와야 되는 이유로 ‘파이가 커야 나눠 먹을 것도 커진다’라는 명제를 들고자 한다면, 제목 역시 이와 관계된 것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위의 명제를 그대로 사용해도 좋고 ‘떡이 커야 떡고물도 많다’라는 식의 속담 또는 ‘성장 도외시한 남미의 추락, 본받아야’ 등과 같은 사례도 동원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예는 글의 본문에서 당연히 사용돼야 하는 것이지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주어진 논제와 관련한 글을 쓸 때, 자신의 입장 정리를 통해 결론은 내린 후, 그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여러 예나 하위 명제들 가운데 가장 예시 적절한 문구를 제목으로 내세우면, 글의 절반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분배의 경우도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 만일, 곰곰히 생각한 끝에, ‘先분배 後성장’에 찬성한 이유를 ‘분배 없는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로 들고자 한다면, 이에 대한 예나 격언, 역사적 사실 또는 관련 문헌을 떠올려야 한다. 따라서, ‘분배 없는 성장, 무슨 의미 있을까?’라는 식으로 있으나 마나 한 제목 보다는 글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하부 명제나 예시 문구를 생각해 내야 한다. 역시, 생각이나 발품을 팔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만일, 필자가 이 의견과 관련해, 남미의 예로 "분배가 없으니 성장론자들의 말이 제대로 먹혀들 리 없었다"며 "연이은 좌파 정권의 등장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결국 분배에 목마른 국민들이 결국 좌파 정부에 손을 들어 준 것 아닌가" 라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고자 한다면, 제목 역시 이러한 내용을 강조하는 쪽으로 흘러가야 한다. "남미의 좌파 정부 득세서 분배의 중요성 배워야"와 같은 보다 구체적인 제목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사실, 제목은 글을 써 나가는 도중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거론하는 예가 바뀌거나 새로운 정보를 추가할 경우, 그러한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중요한 사실은, 어느 정도라도 계획을 세우고 도시 건설에 임하듯, 대강의 구상은 가지고, 한 줄 제목 정도는 머리 속에 지닌 채, 글쓰기에 임해야 글도 힘을 받고 탄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음 시간에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주관적’ 제목들과 드러내는 제목, 둘러치는 제목, 손에 잡히는 제목, 어름어름한 제목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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