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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나의 아내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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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11.21  16: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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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내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 환한 웃음으로 피어난
꽃 같은 아내
꼭 껴안고 자고 나면
나의 씨를 제 몸속에 키워
자식을 낳아주는 아내
내가 돈을 벌어다 주면
밥을 지어주고
밖에서 일할 때나 술을 마실 때
내 방을 치워놓고 기다리는 아내
또 시를 쓸 때나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을 때면
살며시 차 한 잔을 끓여다 주는 아내
나 바람나지 말라고*
매일 나의 거울을 닦아주고
늘 서방님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내 소유의 식민지
명분은 우리 집안의 해
나를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만들어주고
내 성씨와 족보를 이어주는 아내
오래전 밀림 속에 살았다는 한 동물처럼
이제 멸종되어간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아직 절대 유용한 19세기의 발명품 같은**
오오,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 미당의 시
** 매릴린 옐름,




이 시는 이렇게 읽으면 재미있다

너는 아내가 있으니 좋겠다. 고분고분한 아내 있으니 좋겠다. 가만히 네 자식 나아주는 아내. 밥 해놓고 하루 종일 남편만 기다리는 아내. 남편 방 청소해 놓고, 차도 끓여다 주는 심부름꾼 아내가 있으니 좋겠다. 남편 바람 날까봐 노심초사 애태우는 아내 있어 좋겠다. 서방님 동경하고, 서방님 족보 한 귀퉁이 차지하며 불평 없이 남편만 생각하는 아내가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 씹할 놈.

이 시를 읽으면서, 정취에 젖은 분도 있겠지만, 불쾌감을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 매우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남자의 입장에서도 이런 아내를 바라는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기분이 더럽다.

그러나 재미있는 건, 나 역시도 이상적인 여자친구를 상상할 때마다, 누구보다 예쁘며 날씬하고 심성도 참아줄 만한 여자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난 그런 내게 불쾌하지 않을까? 그건, 그런 여자친구인 만큼 깍듯하게 모시면 모셨지, 나를 위해 뭘 해주길 바라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에서 가장 기분이 나쁜 점은, 화자의 말하는 톤이 제법 낭만적이어서, 마치 이 화자가 순수하고 좋은 사람인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본인이 더러운 줄 모르는 더러운 사람을 볼 때 제일 기분이 안 좋다.

그렇다면 이 시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안 좋은 시인 걸까?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면 어떨까? 사실 이 시를 쓴 시인은 여성이다. 문정희시인. 자기는 고상하게 앉아 시나 쓰면서 아내가 차를 타다 주길 바라는 남편을 바라볼 때, 아내는 자신도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 하다.

시 읽는 재미를 위해 일부러 (내가) 시인의 이름을 감추었다. 지레 남자가 화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시를 읽었다면, 시가 불쾌했을 수도 있고, 여자 시인이 쓴 시라고 생각했다면 고개를 끄덕끄덕 했을 수도 있다. 사실 시인이 여자라고 시 속 화자가 여자인 것은 아니다.

시 속의 화자가 여자라면 ‘나의 씨를’이나 ‘나를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만들어주고/
내 성씨와 족보를 이어주는 아내’라는 표현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속 화자는 역시 씹할 놈의 남자일까? 남성에 불만을 지닌 여성 시인이, 망상에 찬 천연덕스런 남자 캐릭터를 표현해 남자들을 비꼰 것일까? 아마도 이것이 가장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한 편, 여성인 화자가 자신이 남성인 듯 감정 이입해서 남성의 비열함을 폭로하는 상황인 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니까 꽤 재미가 있어진다.

여담이지만, 오늘 회사 근처 술자리에서 코카콜라社(사)의 브랜드 매니저 한 분을 만났다. Creative는 어떻게 하는 거냐고,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느냐고 묻길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 시를 읽다 보니, 창의성이란 결국, 쉽게 하나의 생각으로 단정짓지 않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답을 내어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광고홍보학과의 윤태일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시를 읽어라’고 가끔 권하시는데 거기엔 이런 뜻도 담겨 있었던 것 같다.

/ 김원국(시인ㆍ국문학과2005년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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