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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빈집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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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11.28  16: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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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왜 사람은 절절한 것을 잃어야만, 그 절절한 것을 절절하게 그리워하는 걸까? 얼마 전 절절한 것 하나를 잃고 난 후, 절절한 후회와 그 까마득한 좌절과 고독한 외로움을 경험했다. 그 시간 내게 슬며시 정말 슬며시 낙엽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은 시가 바로 기형도의 빈집. 대학시절 읽었던 시, 평소에 기억하지 않고 살았던 시였는데, 마치 잃어버리고 산 옛 애인에 대한 감정처럼 이처럼 다가오다니.‘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의 첫 행이 마치 ‘사랑을 잃고 빈집이 나를 찾았네’처럼 자꾸 맴맴 돌았다. 오랜 시간 속에서 가장 떠나지 않고 문득문득 살! 아나는 시 구절들.

누가 사랑을 포켓식 앨범처럼 차곡차곡 하였겠는가, 사랑했던 대상과 나 사이에 어지럽게 꽂혀있던 불가해한 모든 것들과의 이별하는 시간들은 절망과 맞먹는 고통의 시간임에 틀림없다. 시 속의 이별처럼 짧았던 밤들, 겨울 안개들, 촛불들, 흰 종이들, 눈물들, 열망들, 그 모든 것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 빈집 안에 남았을 때, 그 빈집의 문을 더듬 더듬 잠그는 시인의 마음이 전이된다. 과연 언제쯤 시인은 잘 있거라 툭툭 털어버리면서 갇힌 빈집의 빗장을 풀고 나왔을까.

아, 이런 빈집의 느낌. 빈집에 대한 오랜 생각. 대학시절, 내가 이 시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빈집의 느낌을 쉽게 정의할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읽어두길 잘했다. 조금은 촌스럽고 과장된 표현일 지 모르지만, 시란 이래서 읽는거구나 하는 시의 존재에 대한 무게감. 인생의 길목 길목마다 만날 수 있는 우울하고 힘겨운 순간, 그 아픔에 손짓을 보내주고, 어루만져주는 시, 시의 힘. 특히 대학시절에 읽었던 한편의 시는 살아갈수록 더욱 애틋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오래전에 읽었던 기형도의 빈집이 오늘 내 빈집의 상처를 어루만졌듯이, 언젠가 이 시를 읽는 사람들이 혹여 만나게 될 빈집의 상처도 기형도의 빈집이 어루만져 주리라 믿는다.

/ 이인자(국어국문학과 97년 졸업, 유웨이중앙교육 홍보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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