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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 & Run!, 농구용어, 수비보다 공격을 중요시하는 전술, 그리고 슬램덩크라는 만화에서 배운 단어다. 이번 글은
한번 이렇게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너무나도 유행했던 절망이니 경제파국이니 취직 대란이니 하는 것들을 넘어서, 한번 신나게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대학 동아리란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노는 곳(?)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이
다는 아니다. 제대로 된 강의 하나 찾기 힘든 대학에서, 입학하자마자 취직을 걱정하며 토익책과 컴퓨터 공부를 먼저 해야 하는 현실에서, 동아리는
“인생행로를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말아먹게”도 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동아리들은 더욱 그랬다.
일주일에 네 번의 세미나와 네 번의 집회가 있던 시절. 많은 선배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사람을 만났고, 치열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동아리는
하나의 가족이었고, 하나의 세상이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이 사회의 지배적 질서를 깨뜨리는 힘을 고민했고, 토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80년대 동아리 활동에도 한계가 존재했고 잘못된 점은 많이 있었다. 그 하나는 정치의식의 과잉이었고, 또 하나는
진지한 전문성의 부족이었다. 이는 동아리 활동 역시 사회변혁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인식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90년대부터
동아리 활동에 대한 많은 변화의 길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모든 실험들이 썩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중과 혁명에서 일상과 욕망으로 중심이 이동된 대학생들에게 새로운 시도들은 자본에 복종하거나, 그때그때의 유행에 따라가거나 아니면
결국 옛날 것이 좋다는 동아리 보신주의로 후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동아리 모습은 어떠한가? 90년대 후반의 대학 동아리는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바로
문화관련 동아리들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감상이나 제작, 음악 동아리,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동아리 등 쉽게 접하고 느낄 수 있는
감성적 동아리들의 활동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보다 실용적인 동아리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진 것이다. TIME지
독해모임이나, 벤처 동아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첫 번째의 흐름이다. 대학은 본질적으로 사회와 분리돼 있는 곳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사회의 지배적 질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며, 그 질서를 부수고 새로운 대안질서를 제안하는, 그래서 항상 사회와 긴장관계에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은, 이미 자본의 소비문화에 철저하게 먹혀들어가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저 대학생이라는 간판과,
무의미한 해방감과 심각한 방향 상실감일 뿐이다. 우리들은 이제 상품이다. 어느 기업에 얼마나 높은 값으로 팔려가는가만이 남은 것이다. 이런 대학
사회의 문화 속에서 첫 번째 흐름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저 좋아서, 재미있어서 시작했던 동아리 활동이 나름대로의 고민을 가지고 새로운 대안 문화들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실험을
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수입, 상영이 금지된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나 4.3항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의 상영, 새로운 문화
형식에 대한 고민을 담은 연세대의 ‘난장’행사와 성정치를 다룬 ‘Rape me’행사 등, 그동안 시도됐던 많은 행사들이 바로 좋은
예이다.
물론 어설프고 잘못된 점도 많이 있다.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행사 기획이라든가, 동아리 활동이 큰 행사 위주로
진행되지 않으면 아예 자신들만의 자족적인 행사로 끝나거나, 지나치게 프로들을 쫓아가려는 것 등 지금까지 보여진 오류들은 너무 명확하다.
하지만 난 이제 동아리들에게 싸움을 시작하길 권한다. 그것은 이 사회가 우리에게 정해놓은, 자유와 상식을 억압하는 안전선에
대한 반기이다. 끊임없이 부딪치고 실험하자. 어설퍼도 좋고 엉망이어도 좋다. 즐겁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자. 단순히 만나서 같이 노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시비걸고 트집잡고, 나는 이런 것이 더 좋다고 싸워보자. 또 시비걸 힘이 있다면 직접 행동해보자. 무엇인가 지킬
것에 망설임을 갖지 말자. 세상 모든 것은 필요하면 존재하고 필요 없으면 사라지는 법. 남은 것에 연연하지 말자. 자, 이제 수비따위 신경쓰지
말고 실컷 뛰고 쏘고 놀자! 그래서 유쾌한 대학을 만들어보자. 그것이 바로 Gun & Run!
/ 이요훈(전 대학연합 광고동아리 센서티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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