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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어느 날인가는
이현준 작가  |  skdak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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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3.13  20: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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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는 
                                  - 윤제림
      

어느 날인가는 슬그머니
산길 사십 리를 걸어내려가서
부라보콘 하나를 사먹고
산길 사십 리를 걸어서 돌아왔지요

라디오에서 들은 어떤 스님 이야긴데
그게 끝입니다.
싱겁지요?
 

팔딱팔딱 손목에서 피라미가 뛴다. 잠시 죽은 듯싶어 들여다볼라치면 다시 팔딱 온몸으로 땅을 친다. 어린 시절, 잠시 내게 맡겨진 낚싯대에 끌려 하늘 높이 솟구쳤다 땅에 내동댕이쳐진 피라미는 결국 그렇게 팔딱대다 흙 범벅이 되어 죽어버렸다. 불규칙하던 그 움직임. 마지막을 파르르 꼬리침으로 끝냈던 그 순간이 20여년이 지나 내 손목위에, 내 온몸위에서 재현되고 있다. 죽었다는 이유로 이제야 악몽을 꾸는 나는, 낚시 바늘이라도 빼주지 못했던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응급조치까지 받은 심장이었는데, 의사는 진료 상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렇게 심장에서 흘러나온 파라미들이 맨땅에서 불규칙하게 파닥이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니 의사나 나나 서로 멀뚱멀뚱 미칠 일이었다. 피검사, 24시간 심전도, 운동부하검사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시경까지 하자던 의사는 검사결과를 들고 고개만 갸울갸울 거렸다. 스트레스 탓이 아니겠냐고 조심스레 말하던 그가 어느 날 콩코르정이란 정체모를 약을 처방해줬다. 약사에게 물어보니 생뚱맞게도 혈압약이라 한다. 대뜸 그 의사 참 엉뚱스럽다고 생각했다. 혈압도 높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도 심장이 자꾸 고장 난다는 사람에게 혈압약이라니, 분명 명의 아니면 사기꾼일 터였다. 결국 전혀 믿음이 가지 않던 나는 심장모양의, 그것도 분홍빛의 작고 예쁜 알약들을 한동안 바라보기로 작정했다. 서랍을 꾸미는 장식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와우, 약이 예쁘네요, 학생 몇 명이 관심을 보였으니 나름 장식이 성공한 셈이었다. 

뚝! 갑자기 심장이 거친 팔딱임을 멈췄다. 거참 신기하게도 호기심에 삼킨 콩코르가 제법이었던 것이다. 마술이라고 해도 그닥 틀리지 않을 듯싶었다. 그때 나는 문득 윤제림 시인의 이 시가 생각이 났다. 의사만큼 엉뚱했는지도 모르지만 전라도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의 작은아버지 집에 갈 때마다 난 심장약 아닌 심장약을 사먹고는 했다. 칠흑 같이 어두운 길을 뚫고 5킬로가 넘는 이웃동네 점방까지 군것질거리를 사러 가던 그 밤에, 어둠에 둘러싸인 낮은 숲이 무섭고 서낭당이 무서워 쿵쾅거리던 내 심장을 다스렸던 그 약의 이름은 <돈과자>였다. 온통 소주병이 가득했던 그 점방엔 과자라곤 희한하게도 듣도 보도 못한 <돈과자> 하나뿐이었다. 건빵 절반만한 크기의 과자들은 촌스럽게도 고동색이었고, 이제 와서야 나는 그것이 초콜릿 피복을 흉내 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암튼, 약봉지 같은 무뚝뚝한 비닐봉투에 가득 담긴 그 과자를 입에 넣으면 감쪽같이 쿵쾅였던 심장은 잦아들고 돌아오던 길엔 어두운 길마저 익숙해지곤 했었다. 그 묘한 맛에 길들여져 나는 매년 진도에 갈 때 마다 사십리를 걸어 부라보콘 하나 사먹고 왔다던 그 스님처럼 돈과자를 사먹으러 어두운 길을 재촉하곤 했었다. 몇 년 후 그 점방이 사라지며 과자도 다시 볼 수 없었는데, 고장 난 내심장과 우연히 본 시한편이 문득 그 정체모를 과자를 떠오르게 했다. 거참, 무척이나 싱겁게도 말이다. 왠지 콩코르정 보단 돈과자 하나를 꿀떡 삼켜보고 싶은 그리운 날이다. 

/ 이현준(소설가, 現 철학과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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