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대학의 3대 기능으로 꼽는 것은 교육과 연구, 그리고 봉사이다. 이는 대학의 사명이 학생들을 잘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고, 훌륭한 연구업적을 축적·보급하며, 대학이 터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앞의 두 가지는 비교적 눈에 잘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맨 마지막 것은 겉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매우 중요한 대학 본연의 역할이다.

  대학이 제공하는 지역봉사의 형태는 물론 대학 구성원들의 개인적 차원에서도 가능하다. 지방 자치단체의 정책수립 과정에 참여하거나 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하는 것, 그리고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남모르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그 보기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앞두고 대학의 지역사회봉사는 단순히 개인적인 수준에 한정될 수 없다. 보다 구조적이고도 제도적인 차원에서 대학이 지역사회에 동참하는 것은 지방화시대의 정착과 정보화·세계화 시대의 실천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대학의 미래 존립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의 보고로서, 또한 세계로 열린 창구로서 대학에는 지방의 정보화와 세계화를 선도할 자격과 의무가 있다. 아울러 일생 동안 대학을 두 번 혹은 세 번 다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대학을 젊은 캠퍼스로만 이해하는 것도, 대학을 엘리트의 전당으로만 치부하는 것도 공히 낡은 생각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지식과 정보의 생산주기가 급속히 단축될 뿐만아니라 그것의 생산 및 소비주체도 명확히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대학은 사회의 기능적 일부가 아니라 작은 사회 그 자체이다. 건학 이래 우리대학은 흔히 ‘상아탑’으로 상징되는 고전적 명문대학을 지향해 왔다. 사회에 대한 대학의 봉사기능은 그 자체가 목적으로 설정되기보다 교육과 연구기능의 부산물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지역사회에서도 우리대학은 ‘섬’과 같은 존재였다. 춘천의 대학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전국적인 명성을 먼저 추구한 결과로 지역사회 안에서 소외와 고립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진정으로 지역적이지 않으면 전국적인 대학도, 세계적인 대학도 다 헛된 꿈이다. 왜냐하면 대학의 정체성과 특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 출신 교수와 학생이 압도적인 우리 학교의 경우, 저녁이 되고 주말이 되면, 그리고 방학이 되면 캠퍼스에 정적이 감돈다. 그렇다면 밤과 주말과 방학 중의 우리대학교를 누가 지켜주는가? 혹시 아는지 모르겠다. 미국 UCLA 사회(평생)교육원에 무려 12만 명의 지역주민이 학생으로 등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많은 선진 국가들의 경우, 관·학 또는 산·학 구분이 사라진 것이 이미 오래 전이라는 사실을. 중세 대학과는 반대로 현대 사회의 대학은 자세를 낮추고 밖으로 열려 있음으로 해서 존재 의미를 가진다. 물론 대학의 역할에 있어서 주객이 전도돼서는 곤란하다. 작금 서울의 소위 명문대학들이 돈벌이를 위해, 또는 유력 인사들간의 연줄망 형성을 위해 혈안이 돼 서로 경쟁하는 풍조는 우리 대학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과제는 대학의 격조와 품위를 유지하면서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발전이 곧 우리대학의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대학 구성원 모두가 무장하는 일이다. 우리대학이 현재 기치로 삼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 국내 최고 수준의 교육, 그리고 지역사회 발전에 대한 봉사는 서로 구분되는 영역도 아니고 실행상에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추진됨으로써만 최대의 시너지(synergy)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제2, 제3 캠퍼스 개념을 대학의 공간적인 확산으로만 인식하고 있는데, 우리 대학의 경우 그것을 지역사회에 담을 낮추고, 지역주민에게 문을 열며 또한 지역발전에 동참하는 기능적인 복합대학(multi-university) 방식으로 이해하기를 권한다.

/ 전상인(사회교육원장·사회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