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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시인의 말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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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5.24  12: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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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유홍준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동그랗게 말아쥔 아이의
손아귀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얘야, 그 손
풀어
매미 놓아주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단다.

어떤 면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죄책감이 많거나, 죄책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미 한 마리 움켜 쥔 것 때문에 ‘평생 우는 손’으로 살 것이란 두려움을 느끼진 않을 테니까.

뭐 꼭 글을 쓰는 사람만 죄책감이 많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고야의 그림이나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봐도 어쩐지 죄책감이 느껴지고는 하는데, 이건 뭐 나만의 느낌일지도 모른다. 아참, 베토벤의 <Moon light>나 신성우의 <별리>를 들어도 죄책감이 느껴진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죄책감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은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유리할 수 있다. 물론 늘 어떤 생명의 살을 구워먹거나 양념해 먹거나 날로 먹으며, 혹은 열매를 따먹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이 ‘무엇이 죄고 아니고’를 말하기에 적당하진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적당하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능력이 특별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학교 다닐 때, 좋아하던 여자 후배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바퀴벌레가 나타나자 나에게 ‘잡아 죽여서 변기에 버리라’고 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인류와 바퀴벌레 종족은 이미 상식적으로 명백한 원수 사이가 된 것인지, 그렇더라도 왜 ‘살생’을 타인에게 ‘청부’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물론 나는 냉큼 그녀가 뜯어준 휴지를 받아 바퀴벌레를 눌러 죽였고,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그녀와는 잘 되지 않았는데, 여전히 내 손에는 바퀴벌레를 잡아 납작하게 죽일 때의 기억이 남아 있다. 마약중독자들이 몸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을 보듯이, 연애의 금단증세가 일어난다면 나도 내 손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지.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의 연애를 지켜보면, 간혹 헤어지고 난 뒤에 자신이 못되게 굴었거나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친구들이 있다. 사귀고 차버리고 미안해 하고, 사귀고 차버리고 미안해 하고, 이런 일들을 반복하는 친구들은 ‘죄’ 혹은 ‘죄책감’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혹, 제멋대로고 이기적인 여자가 마음이 여리고 순박한 여자보다 더 인기 있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다. 이기적인 여자를 상대할 때, 훨씬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손에 잡힌 매미보다도 여려서, 연애를 하다가 마치 ‘죽을 것처럼’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칼은 자신의 연인에게 가장 잘 드는 법이니까…. 아무래도 찔러도 죽지 않을 것 같은 터프하고 이기적인 여자가 편하다.

결국 좋아한다면 손에 움켜잡기보다 풀어두고 지켜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영화<킹콩>의 비극은 전혀 엉뚱하게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 잠결에 아차, 손을 움켜쥐었다간 나의 ‘나오미 왓츠’님이 모가지가 부러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힘의 비례가 맞지 않는 사랑은 흉포하다.

손을 ‘동그랗게 말아쥔’ 아이는 매미를 죽일 마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동그랗게 말아’ 공간을 만들어 매미가 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매미가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평생 우는 손’으로 살게 되는 것이 그렇게 치명적인 일은 아니다. 다들 그러하듯 술 몇 잔 걸치고 잠시 아픈 척 한 뒤에 속 쓰린 눈으로 출근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오르면 되니까.

‘생활’은 ‘죄책감’보다 강하다. 아이의 엄마가 “빨리 죽은 매미 버리고 학원에 가라”고 말한들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대학에 가서 예쁘고 귀여운 누군가를 대신해서 바퀴벌레를 잡아 죽이며 씨익- 웃을 지도 모르지.

이제 곧 여름이다. 매미가 울겠군.

/ 김원국(시인ㆍ국문학과 05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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