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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외톨박이
이현준 작가  |  skdak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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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6.02  1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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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박이

기다란 개나리 가지
망나니 칼이 되어 보이는
모든 것을
숨통 끊어놓는 순간들
살인자는 모두가 외롭다
 

중학교 1학년 시절의 어느 토요일, 나는 운동장 귀퉁이의 버짐나무 아래에 가방을 깔고 앉아 멍하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웃해 있는 여고를 다니는 막내 누이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무슨 일인지 그날따라 축구를 하던 아이들도 일찍 가방을 챙겨 사라졌고 운동장은 토요일이라고 하기엔 이상 하리 만큼 조용했다. 무료해진 나는 국어 책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따분한 내용에 이내 책을 덮고, 발밑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던 개미 한 마리를 집어 올려 손등에 놓고 이리저리 손을 돌려 개미의 방향감각을 무력화시키는 것에 열중했다. 

“타악!” 

갑작스런 소리에 고개를 드니 멀리 운동장 맞은편의 개나리 군락 앞에 한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그는 마치 먹잇감을 향해 다가가는 사자와 같은 모양새로 무언가를 노리는 듯 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겐 사자의 이빨 대신 가느다란 개나리 가지가 들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몇 미터를 숨죽이고 나아가더니 왼손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타악, 구경하고 있던 나조차도 숨 막히던 긴장을 깨며 개나리가지가 허공을 갈랐다. 그의 느닷없는 행동에 놀라 숨을 고르던 나는 그가 다음엔 무슨 짓을 할까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그는 또 다시 주위를 두리번대다 조금 전과 똑같이 몸을 살짝 웅크리고 무언가를 향해 조금씩 전진했다. 이내 다시 한 번 그의 작은 팔이 허공을 갈랐고 20여분이 넘도록 그는 이곳저곳 자리를 옮기며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사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어느새 굵은 버짐나무 밑둥치에 몸을 숨긴 채였다. 왠지 들키게 된다면 죽을 때까지 그 얇고 날카로운 개나리가지에 얻어맞게 될 거라는 생뚱맞은 느낌이 들었던 탓이었다. 

조용했던 주위가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졌다. 이웃한 여고의 학생들이 하교를 하기 위해 우르르 좁은 학교 문을 나서며 수다스레 그 작고 빠른 입들을 조잘거렸기 때문이었다. 순간 나는 그 속에 섞이어 나올 누이를 놓칠까 싶어 사내아이의 존재를 잊은 채 가방을 들고 버짐나무의 옷자락에서 계집애처럼 뛰쳐나왔다. 순간 나는 그의 눈과 마주쳤고, 어쩔 줄 몰라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슬그머니 시선을 다시 두었을 때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나는 마치 혼령이라도 보고 있었던 기분이었고 호기심에 가득 차서 그가 개나리 가지를 들고 있던 곳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있던 자리엔 놀랍게도 이리저리 찢긴 수많은 잠자리들의 파편들이 흙바닥 위에 기하학적인 무늬들을 찍어대고 있었다. 평화롭게 나무 가지에 앉아 졸던 잠자리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날카로운 칼에 몸이 찢겨나갔을 것이었다. 갑자기 섬뜩해진 나는 피부가 옷가지와 마찰하는 소리를 들으며 얼른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 나를 기다리던 누이를 금세 찾았고, 집에 가는 내내 누이 옆에 바짝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소년이 나였는지, 내가 그 소년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난 외로웠고 짧지 않은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나는 고등학교 문예반 활동 때 선생님이 제시한 시 주제에 자연스레 그 사내아이를 떠올렸다. 주제는 외로움이었고, 나는 이 짧은 시를 마치 외우고 있던 시 마냥 담담히 써 내려갔다. 오랜 시간이 지난 요즘도 나는 가끔 이 시를 웅얼거릴 때가 있다. 습관적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외톨박이 신세란 우리네 인생을 관통하여 흐르는 삶의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 이현준(소설가, 現철학과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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