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시가 있는 하루] 서시
이현준 작가  |  skdaks@empa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7.08.30  11:40:1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序詩 - 이성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난 골목탐험대의 대장이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20대 후반 늦깎이 대학생이던 시절, 난 철학과 후배들과 골목탐험대를 결성했다. 우리의 주목적은 춘천의 허름한 골목길을 탐험하는 일이었다. 점점 사라져가는 골목길의 따뜻한 정취를 우리 대원들은 모두 그리워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였지만 자란 환경만은 40대의 그것과 다름없던 우리들은, 가방에 매단 작은 스피커로 7,80년대 포크송을 들으며 골목골목을 누볐다. 남궁옥분의 노래에 다함께 흥얼거리며 촌스런 춤을 추기도 하고, 기웃기웃 담장 너머 허름한 고택들의 정원을 훔쳐보던 우리는 종종 주민들의 의심스런 시선도 감수해야 했다. 돈 오천원을 주머니에 넣고, 다리가 아파오면 우린 함께 소주한잔에 헐한 식사를 하고 걸어온 골목길을 되짚어 학교까지 돌아오고는 했다. 함께 했던 후배들이 졸업을 앞둔 어느 가을, 난 그동안 아껴놨던 골목지대로 대원들을 이끌었다. 내게는 추억이 잔뜩 묻어있는, 눈감고도 누빌 수 있을 정도로 훤한 곳이었다.

 대학교 1학년, 그 소심하던 시절에 난 좋아했던 동아리 후배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살던 동네를 하릴없이 서성대고는 했다. 말이 후배지 내가 학교를 늦게 들어온 셈이니 동아리 기수로는 동기인 여자애였다. 대학을 가면 멋진 연애를 하려고 벼르던 내게 그 친구는 정말 완벽해 보였다. 주섬주섬 다가가 말을 걸기도 하고, 같은 초보면서 붓을 잡는 손동작을 가르쳐주기도 했던 나는 살짝 스친 온기에 하루 종일 뛰는 가슴을 어쩔 줄 모르곤 했다. 어쩌면 나의 골목길 탐험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친구가 나타날 때까지 나는 정처 없이 그녀가 살던 골목길을 서성이곤 했다. 오랜 서성임에 몸이 무거워지면 골목길을 한 바퀴 돌고 또 서성이길 반복했다. 서성임 세 번에 한번정도 그녀를 만났음에도 나는 거의 두 달간을 그렇게 몇 번이고 골목길을 내처 걸었다. 만나봤자 집에 가는 길이구나 하며 손 한번 드는 게 전부임에도 난 힘겹지 않았다. 그렇게 멍청했던 시간이 지나, 군대를 가고, 복학을 하면서 그 친구는 기억 속의 부유물처럼 희끗희끗 그 모습을 내비치는 희미한 존재가 되어갔다. 그런데 문득 골목탐험대를 이끌고 그곳을 가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이 골목길은 특별할 것이 없다는 표정들의 탐험대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내 기억엔 그날의 마지막 탐험이 가장 인상깊이 남아있다. 그녀를 기다리며 허기진 배를 채우려 들렸던 작은 식당에서 골목탐험대는 마지막 만찬을 가졌고, 우리의 골목탐험도 나의 서성임도 마침표를 찍었다. 요즘도 가끔 우연찮게 그녀의 집근처를 지날 때면 상가건물에 가린 골목길이 머릿속에 환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녀의 모습보단 나에게 그늘을 만들어줬던 큼직한 느릅나무가 아직도 같은 자리에 있을까, 나는 항상 궁금해 하곤 한다.

/ 이현준(소설가, 現철학과조교)

이현준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한림대 수시모집 경쟁률 5.09대 1로 ‘3년 만의 상승’
2
[보도] 2023학년도 국가장학금 신청, 재학생 1차 필수
3
[보도] 코앞으로 다가온 졸업, ‘유예 신청’ ‘심사료 납부’
4
[보도] 4차 동아리 대표자 회의로 ‘유종의 미’ 거둬
5
[보도] 겨울밤을 수놓은 하나의 목소리, ‘한림합창단 정기공연’
6
[보도] ‘창의적인 아이디어’ 캡스톤 경진대회 실시
7
[기획] 1년 만에 부활한 총학, 4곳서 연장투표도 진행돼…
8
[선거특집] “학우들의 선택에 부응하는 학생회가 되겠다”
9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1
10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2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