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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저녁편지
이현준 작가  |  skdak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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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0.31  22: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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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뇌경색이네요. 응급실의 젊은 의사가 CT결과를 보며 말했다. 3시간 안에 왔으니 혈전용해제를 써보자 했다. 차도가 없으면 뇌가 부을 수도 있고, 그러면 뇌압을 낮추는 두개골 절제술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의례 응급실 의사들은 최악의 상황을 말한다. 그쯤은 알고 있다. 젊은 의사는 두어 번 더 ‘사망’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 오종종한 얼굴의 그 작은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난 ‘부탁 합니다’ 고개를 숙였다. 일흔의 어머니는 말이 없었고, 누나들은 울었다. 나가서 울어. 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중환자실로 옮긴 아버지는 하루 세 번밖엔 면회가 되지 않았다. 혈전용해제가 별 효과가 없었는지 아버지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거나 무의미하게 손을 움직였다. 감각을 체크하려 의사들이 꼬집은 팔다리의 퍼런 멍에 가슴이 아려왔다. 난 5일 동안 꼬박 중환자실 앞에 머물렀다.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드나들었고 난 그제야 우리에게만 닥친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스무 살의 뇌경색 환자도 있었고, 나이 서른아홉에 운명을 달리한 가장도 있었다. 한 무리가 와서 웅성거리다 가고, 울다가기도 하고, 나처럼 몇날며칠을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연가가 끝나는 마지막 날, 아버지가 나를 알아보셨다. 말씀은 못하셨지만 그것만으로 족했다. 지쳤던 마음에 경쾌한 소리가 나는 걸 느꼈다. 제 손을 잡아보세요. 아버지가 가까스로 손을 올려 내 손을 잡아주셨다. 핑,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뭔가를 말씀하시려 했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다행이예요. 만감이 교차했다. 나의 아버지, 정말 다행이었다.

자리를 비운 며칠 사이에 행정실 창밖 풍경은 단풍이 한창이었다. 바로 앞 느티나무는 노란 낙엽까지 떨구고 있다. 겨우 6일 사이에 나는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온 기분이었다. 마음이 차분해져서 왠지 뚝딱 소설한편이 써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버지에 대해 쓸까, 고민했다. 하지만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내 소설쓰기를 인정해 주신 적이 없던 아버지였다. 소설가는 굶어죽는다. 그뿐이셨다. 쓰러지시기 전날, 아버지는 안경너머로 문학잡지에 발표된 아들의 소설을 꼼꼼히 읽어주셨다. 예의상 드렸던 것인데 아버지가 내 소설을 읽고 계신다니…, 나는 침을 꼴깍 삼켰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도 끝내 모른 척하셨던 아버지였다. 수고했다. 아버지 한마디에 난 마음이 뭉클했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 병상에 누워계신다. 그것이 얼마나 긴 시간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허락된다면 내년 봄에는 너른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아버지와 같이 듣고 싶다. 내 소원은 지금 오직 그것뿐이다.

/ 이현준(소설가, 現철학과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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