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을 기점으로 소련, 동구의 사회주의 나라들은 대부분 몰락했다. 이 사회주의 체제들은 대부분 「공산당 선언」을 교과서로 삼아 거기에 담긴 혁명정신을 추종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소련,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의 몰락과 함께 「공산당 선언」을 비롯한 맑스이론과 사상, 맑스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사상도 몰락해버렸다고 하는 견해들이 지배적이 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대체로 한가지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것은 이론과 실천(혹은 실제) 사이의 괴리를 보지 못하고 양자가 일치하는 것처럼 판단한다는 점이다.

  「공산당 선언」은 물론 수많은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1백년이 넘도록 『자본론』과 함께 『성서』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였다. 그리고 얼마전까지는 세계인구의 1/3 정도를 포괄하는 공산권 국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서방세계의 사회주의 계열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필독서의 하나가 되어왔다. 그만큼 「공산당 선언」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실천운동, 그리고 이와 관련된 학술적 연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공산당 선언」을 비롯한 맑스의 정치, 사회사상은 20세기초 러시아 혁명운동의 지도자였던 레닌에 의해 일정한 부분이 적극적으로 추종, 실천되었으며 그러한 영향은 동유럽과 제3세계의 사회주의 나라들에도 전파되었고 일정한 부분 사회주의체제의 일부로 체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공산당 선언」이나 맑스의 사상은 어디까지나 이론 혹은 사상인 것이며, 실천운동이나 현실 자체와는 구별되는 성질의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주의사상이나 공산주의 실천운동은 맑스나 「공산당 선언」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맑스의 생존 시기나 그 이후에도 맑스 사상과는 다른 여러 형태의 사회주의 사상이나 실천운동들이 존재해 왔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이론이나 사상을 어떤 실천이나 역사현실과 똑같은 것으로 일치시켜서 사고해서는 안될 것이며, 「공산당 선언」의 내용 또한 모두 뭉뚱그려서 옳다거나 그릇되다거나 하는 식으로 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 중에는 오늘날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타당한 것, 또 그렇지 않은 것이 한데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자본주의의 혁신적, 팽창적인 성격, 그리고 모순적인 발전경향을 묘사, 설명하는 부분은 여전히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논란이 심한 부분은 계급과 혁명에 관한 부분이다.

  예컨대, “계급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가공적으로 만들어낸 개념에 불과한갚,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는 계급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양대 계급으로 단순화, 양극화되지 않고, 제3의 계급, 즉 중간계급(중산층)이 비대화되는 평준화된 계급구조를 보이고 있지 않은갚,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노동자들이 의식화, 조직화되어 혁명운동의 주체로 나서게 된다는 주장은 현실역사에서 부정된 것이 아닌갚, “자본주의사회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운동에 의해 필연적으로 붕괴된다는 주장 또한 부정된 것이 아닌갚, “현대 자본주의의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계급초월적인 공공선의 담지자가 아닌갚등등 이런 논란들은 아직 한마디로 단정짓기 어려운 것들이며, 따라서 사회주의와 함께 ‘몰락’해버린 쟁점이라고 단정짓기도 어려운 것들이다.

/ 유팔무(사회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