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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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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3.05  17: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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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유희경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쪽 부엌 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이 난다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면도를 하다가 그저께 벤 자리를 또 베였고
아무리 닦아도 몸에선 털이 자란다
타일은 오래되면 사람의 색을 닮는구나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삼촌은
두꺼운 국어사전을 닮았다
얇은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뒷문이 지워졌다 당신이 찾아올 곳이 없어졌다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간밤 당신 꿈을 꾼 덕분에
가슴 바깥으로 비죽하게 간판이 하나 걸려진다
때절은 마룻바닥에선 못이 녹슨 머리를 박는 소리
아버지를 한 벌의 수저와 묻었다
내가 토닥토닥 두들기는 춥지 않은 당신의 무덤
먼지들의 하얀 뒤꿈치가 사각거린다


 

개강은 즐거운가? 혹은 싫은가? 개강을 맞이하는 여러 가지의 좋고 싫은 이유들 중에서도 두 가지만큼은 알게 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하나는 학교에 가고 싶지만 어떤 형편 때문에 가지 못하게 되어서 개강이 싫은 이유이다. 등록금을 구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학교 등록을 포기하고, 게다가 왜 그런지 부끄러움까지 느끼게 되는 경우를 나는 또 알게 되고 싶지 않다.

다른 하나는, 다른 대학, 예를 들어 서울대라면 개강이 반갑겠지만 한림대라서 학교 가기가 싫다는 大단한 이유인데, 나로서는 이렇게 大단한 이유를 가지고서도 굳이 등교를 하는 것도 신기해 보인다. 이런 사람은 알고 싶지 않다.

그러나(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 두 가지 이유를, 나는 알고 싶지 않더라도 당신들은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들뜨는 건 좋지만, 학교 생활 자체가 붕 떠버린 채로 금방 한 학기가 지나갔던 적이 나에겐 있고, 당신들의 과거나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이유가, 당신들이 마음을 둘러매고 학교를 거닐다가 펼치거나, 뒤섞거나, 누군가에게 줘버리거나, 벤치 구석에 가래를 뱉을까 말까 갈등할 때 잠시 떠올렸으면 좋겠다. 혹은 이 시에서처럼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이 시의 주인공 녀석은 대충 봐도 젊고, 얼마 전에 아버지를 묻었다. 이 친구는 아버지가 막대한 보험금을 남겨서 개강이 즐거울 수도 있고, 대학 가면 아버지가 이것 저것 많이 해주기로 해놓고는 돌아가셔서 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훌륭하다.

개강, 새학기, 봄, 신입생, 파릇파릇, 유행, 여자, 새로운 여자, 업데이트된 바보들로 가득한 기분 좋은 시기에 이 시를 고르고 이런 얘기로 초를 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렇다. 당신의 새학기는 시작과 동시에 끝나가고 있다. 당신의 시(詩)는 시작되었고 졸작이 되어버릴 가능성은 당신이 짐작하는 그 만큼이다.

/ 김원국 (시인, 국문학과 05년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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