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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고갱, '이브'를 탐하다식민지 여성에 대한 백인 남성의 동경
신혜경 교수  |  shinh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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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3.08  11: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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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갱의 <환희의 땅>(1892)
 
고갱하면 떠오르는 대중적인 신화가 있다. 한때 주식거래인으로 잘나가던 고갱이 30대 후반에서야 비로소 전업 화가가 되었다는 사실, 수많은 에피소드로 윤색된 고흐와의 동거생활,  파리에서의 성공을 뿌리치고 “원시의 섬” 타히티로 향한 그의 예술적 정열, 그리고 미개의 땅에서 고독하게 이루어낸 “고귀한 야만인”의 위대한 예술적 성취 말이다. 

물론 이러한 고갱의 초상이 완전 환상은 아니지만, 그러나 모든 천재의 신화가 그러하듯 여기에도 모순으로 가득 찬 그의 진면목이 몽땅 드러나는 것 같지 않다. 사실 그가 늦깍이 화가로 나섰던 것은 1882년 주식시장의 붕괴로 실업자가 되었던 정황이 있었으며, 타히티에서의 삶도 결코 고독하거나 원시적인 은둔생활은 아니었다. 쉰셋의 나이에 다섯 아이와 아내를 떠나온 고갱은 열세 살의 소녀 테하마나와 동거를 하지만, 임신한 그녀가 더 이상 모델을 할 수 없자 다른 10대의 모델 둘을 찾았다. 그가 훌쩍 그곳을 떠났을 때, 모든 식민지의 아내들처럼 그녀도 홀로 남겨졌다. 고갱의 자서전적 기록인 <노아노아>에는 “나는 타히티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점차 문명이 나를 떠나간다. 나는 이제 한 마리의 동물처럼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실상 그는 타히티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줄곧 매독 등의 병치레 때문에 고생했으며, 돈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그는 나무에 먹을 것이 열려도 거둘 줄을 몰라서 중국 상인에게 비싼 돈을 주고 통조림을 사먹었다. 말하자면 고갱 자신의 기록 또한 실제의 그가 아니라 상상적으로 주조된 이미지에 불과했다. 그가 그린 타히티 여인 또한 낯선 이방인의 눈으로 원시를 구체화하려는 욕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문명인”들의 성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육체의 아름다움과 쾌락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타히티 여성과 성에 대한 재현 역시 고갱이 가졌던 인종적이고 성차별적인 식민지 담론의 표현일지 모른다. 그것은 상호작용을 허용치 않은 식민주의적 역학과 논리에서 타히티를 “인류의 유년”으로 보려는 백인 남성의 눈에 의해 주조된 문화적 구성물은 아닌지.

고갱의 <환희의 땅>은 기독교적인 상징을 이교도적인 배경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의 여성은 타히티 판 에덴동산의 이브이다. 이브는 고갱이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보았던 보로부드르 사원(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인도네시아 불교사원) 부조의 포즈를 그대로 취한다. 그녀의 어깨 위에 있는 빨간 날개의 도마뱀은 성경의 뱀과 같은 유혹을 상징한다. 사과 대신에 깃털처럼 보이는 꽃이 등장하는데, 이 꽃은 불사의 눈, 어머니의 보호의 눈, 죽음의 사악한 눈 등등 몇 가지 의미를 상징한다. 고갱은 이브의 모습을 애초에는 자기 어머니의 얼굴로 그리려 했으나, 완성된 작품에서는 테하마나의 얼굴로 표현했다. 건장한 어깨, 두꺼운 발목, 음모의 표현과 벌어진 발가락 등은 전통적인 서양의 누드화의 규범과는 여실히 다르다. 고갱이 그토록 찬미했던, 그래서 타히티 방 벽에 붙여놓았던 마네의 <올랭피아>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갱의 누드가 또 다른 의미에서 이국적인 것에 대한 백인 남성의 동경과 관음증의 대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그림의 여성은 도덕적 판단과 행위를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인간으로서 새로운 이브의 상을 보여주는 자립적 여성이기보다는, 타히티를 철저히 능욕하고 파괴한 서구문명의 시선에서 차갑게 대상화되고 포즈로서 고정되어버린 식민지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낯선 백인 화가의 지시에 따라 꼼짝 못하고 ‘얼음’이 되어버린 불편한 소녀의 심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나라도 얼른 가서 “땡”해주고 싶을 만큼 말이다.

/ 신혜경(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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