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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냉전의 중심에서 '자유'를 외치다!
신혜경 교수  |  shinh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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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3.21  20: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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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슨 폴록 (1948)
 
“문화예술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사람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순화시키며,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본래의 역할을 한다면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제는 이념을 넘어서야 합니다.” 유인촌 문화부장관의 취임 직후의 일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문화계를 후끈 달구었던 “코드 인사” 논란은 위 발언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듯하다. 유 장관은 기존 정권이 임명한 문화관광부 산하 기관장들의 자진 사퇴를 연일 강력하게 촉구했다. 급기야 그는 문화예술위원장과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스스로 퇴진하지 않는다면, 재임기간 중 일으킨 문제를 명시하겠다”는 으름장성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은 유 장관을 “권력이란 낮술에 취해 폭력의 칼을 휘둘러대는 망나니”에 비유하는 막말성 성명으로 대응했다. 이렇듯 밀어내기와 버티기의 한판 승부가 한창인 가운데,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심사가 적잖이 헛헛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이러한 힘겨루기가 진정한 문화적 발전을 모색하는 몸부림의 일환이기보다는, 또 다른 편 가르기와 밥그릇 싸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 필요한 예술과 문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이념과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반성과 관심이 뒷전에 놓인다면, 이 모든 싸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해묵은 악순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최근 사태는 자본주의 사회의 예술과 문화가 지니는 한 측면을 아주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예술과 문화는 전적으로 자율적일 수 없으며, 폭넓은 사회적 맥락과 권력, 자본관계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잭슨 폴록의 <No.5>가 눈에 들어왔다. 폴록은 보통 거대한 캔버스를 땅에 눕혀 놓고 공업용 물감을 막대기에 묻혀 흩뿌리는 드리핑 기법을 통해서 작가의 행위가 보여주는 역동성과 에너지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화면 위의 물감 자국은 화가의 움직임, 즉 여러 방면에서 화면에 다가와 팔을 흔들거나 손목을 돌리는 행위를 기록한다. 그림은 이제 어떠한 실재 사물의 재현이 아니라, 화가 자신을 표상하는 물감의 뒤엉킴을 통해서 그의 행위의 궤적을 보여주는 장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추상 표현주의>, 혹은 <액션 페인팅>이라고 한다.  

추상표현주의는 그린버그라는 미국의 이론가에 의해 서구 현대미술의 최고점에 서있는 예술로 평가되었다. 그린버그에 따르면, 현대미술은 자기비판이라는 과제 속에서 다른 예술장르의 “오염”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이는 결국 회화 매체의 특수성, 즉 평면 위에 발려있는 물감이라는 성질에 주목하였다. 따라서 현대미술은 주제나 내용, 삼차원성을 배제하고 점점 더 추상적이고 평면적으로 되었는데, 이는 마네로부터 세잔느를 거쳐 추상표현주의로 이어지는 역사로 나아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후 추상표현주의는 세계적인 미술을 선도하는 가장 미국적인 미술로서 추앙받게 되었다. <No.5>는 2006년 약 1313억원에 팔려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기도 하다. 

그런데 추상표현주의가 전후 미국식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표상으로서 세계적인 미술로 부상된 데에는 미소 대립구도에 입각한 냉전체제의 구축에서 자유진영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미국의 정치 경제적 힘을 무시할 수 없다. 록펠러라는 거대 재벌이 후원했던 <현대미술관>의 역할과 냉전의 산물인 CIA의 대외전략이 부재했다면, 과연 추상표현주의는 세계적인 신화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서 if라는 물음은 무의미한 것이라 하더라도 한번 쯤 생각해볼 일이다.


/ 신혜경(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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