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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하루] 봄밤
이현준 작가  |  skdak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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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4.05  13: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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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밤
                                                                - 안도현

     저녁밥 일찌감치 먹고 
     마당가에 내려섰더니
     난데없이 겨드랑이가 자꾸 가려워오는 것이었다
     주뼛주뼛하다가 당최 참을 수 없어서
     긁어대다 보니 어라, 내 몸에서
     무엇이 군시렁군시렁거리며 돋아나기 시작하는데
     가만히 보니
     살구꽃이었다
     날은 어두워오는데
     살구나무는 무장무장 부풀어오르는데
     식구들이 나를 찾을 것 같으니
     꽃도 좋지만 나 이제 꽃 그만 피울란다, 생각하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나 이렇게 온몸에 꽃을 매달고 서 있는데
     나를 보지 못하고
     싸가지 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얼마 전, 어머니가 고향집 신발장을 정리했다. 이게 다 뭐니, 우르르 신발들이 쏟아져 나왔다. 7남매의 오래전 신발들이 산처럼 쌓였다. 풀풀 먼지가 날리는 그 사이로 노란색 운동화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런 걸 누가 신었었지? 어머니는 나에게 보란 듯 손에 들고 흔드셨다. 어머니 말대로 어른이 신기에는 민망한, 정말 샛노란 운동화가 두터운 먼지를 뚫고 그 색을 발하고 있었다. 아하, 순간 나는 이마를 쳤다. 날 보며 생긋 웃던 막내누나의 오래 전 표정이 생생하게 생각난 탓이었다. 

추위가 끝나가던 7년 전의 어느 봄날, 막내누나는 느닷없이 운동화 하나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평소 감성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던 그녀가, '봄나들이용 신발이야' 라며 내게 신발을 달랑달랑 흔들어 보였을 때, 난 그녀의 웃는 낯을 멍하니 쳐다봐야했다. 오종종한 입으로 봄을 말하는 그녀 손에서 정말 노란 빛깔의 봄이 금방이라도 꽃 봉우리를 터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저런 꽃빛보다 더 진한 노란색을 사들고 왔을까? 난 현관에 놓인 신발을 몇 날을 두고 관심 있게 살펴보곤 했다. 하지만 그 신발을 과연 그녀가 신고 다닐 수 있을까 의아했고, 결국 내 예감대로 누나는 그 해 봄이 한창일 때도 신발을 신지 않았다. 유치원 교사였던 그녀에게 어울릴 법도 했지만, 멋쟁이 그녀가 모든 옷에 언발란스한 그 신발을 신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더구나 돼지발에 꽃신이라니. 나는 혼자 킥킥 웃어댔었다.

그리고 5년 전 봄, 그 신발은 내 발에 신겨져 있었다. 텃밭용 신발로 쓰려던 아버지가 밭까지 왔다갔다하는 그 짧은 길에서조차 민망하다고 방치해 놨던 걸 가져왔던 것이다. 난 신발을 신고 향교와 강대, 애막골을 지나 당시 새로 생긴 춘천박물관까지 봄나들이를 갔었다. 족히 40분이 걸리는 그 시간동안, 사람들은 내 나이와 청바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란색 운동화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난 사람들의 시선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신발이 결국 무겁다고 느꼈다. 물론 당시엔 이것도 낭만이라 생각하며 태연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사실 그 이후로 나는 그 운동화를 다시는 신지 않았고, 내 기억에서도 까마득히 잊혔던 것이다. 

어머니 생신을 맞아 며칠 전 고향집을 찾았다. 늦은 밤 파티가 열렸고, 술이 다 떨어지자 막내인 내가 술을 사러 가야했다. 슈퍼에 가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려는 순간 난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 노란 운동화를 발견했다. 멈칫 서서 잠시 고민하던 난 술기운에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너무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이상한 봄기운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내 발등이 몹시도 간지러운 걸 느꼈다. 어이쿠, 어느 새 발등에서 꽃이 피고 있었다. 노란색 꽃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타듯 활활 피어올랐다. 슈퍼에 이르자 난 걱정이 되었고, 혼자 중얼거렸다. 꽃나무가 술을 사면 싸가지 없다 하지 않을까, 라고. 그렇게 미친 듯 봄이 오고 있었다.



/ 이현준(소설가 ․ 국문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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