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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몸이 무거워 슬픈 '비올렛타'의 비극
박병훈 교수  |  basspbh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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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4.12  14: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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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6일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의 초연공연의 실패라는 참담한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현재 모든 오페라 애호가들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전 세계에서 <카르멘> 과 함께 공연 횟수가 가장 많은 <라 트라비아타>가 왜 초연공연에서 실패를 했을까?

이 오페라는 뒤마필스의 소설 [춘희]를 각생한 것으로 [몽테크리스토 백작],[삼총사], [철가면] 등으로 유명한 뒤마의 아들인 뒤마필스는 당시 프랑스 사교계를 휩쓸었던 고급 창녀인 마리뒤 프레시를  모델로 삼은 소설 [춘희] 를 발표하면서 유명해 지기 시작하였다. 1852년 베르디는 파리 방문중에 뒤마필스의 연극 [춘희]를 구경하고 오페라를 착안하였고, 대본은 <리골렛토>의 대본을 썼던 피아베가 맡았다. 베르디의 초기를 대표하는 <리골렛토> 나 <일 트로바토레>에 비해 극적인 요소와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이 작품이 오늘날도 널리 사랑받는 것은 여중인공 비올렛타를 중심으로 한 비극적 결말의 감상적인 사랑 이야기와 그 내용과 너무나도 잘 어울어지는 음악의 매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막이 오르면 비올렛타의 집에서 화려한 파티가 벌어지고 남자 주인공인 알프레도를 소개받은 비올렛타는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알프레도에게 노래를 청한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그 유명한 이중창 ‘축배의 노래' 다.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비올렛타를 찾아와 아들과 헤어지기를 설득하고 비올렛타는 제르몽을 이해하며 알프레도에게 눈물의 편지로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비올렛타의 진심을 몰랐던 알프레도는 후에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아버지의 질책에 자신이 비올렛타를 오해한 것을 후회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가 다시 비올렛타를 찾아 왔을 때는 폐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고 알프레도의 품에 안겨 유명한 이중창 ‘사랑하는 이여, 파리를 떠나서...’를 부르며 비올렛타는 숨을 거둔다.

이와 같이 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와 아름다운 선율의 아리아들이 많은 이 오페라는 누구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가장 대중적인 오페라이다. 그런데 왜 이 <라 트라비아타>는 초연에서 실패를 했을까? 실패의 원인이 음악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지금 이 오페라의 인지도를 보면 알 것이고, 그러면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 문제는 바로 노래를 부른 가수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날씬하고 예쁜 여자 성악가들이 많아서 비올렛타 역에 적합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만 <라 트라비아타>가 초연될 시기에는 대부분의 여자 성악가들의 체구가 상당한 거구였고 노래로 삶의 경험을 표현하는 노련함도 있어야 했기에 나이도 많았었다. 하지만 비올렛타가 누구인가? 바로 사교계를 휩쓴 고급 창녀이고 나중에는 피를 토하며 사랑하는 연인 품에서 힘없이 죽었던 여자였다. 사교계를 휩쓴 고급 창녀의 모습이 육중한 몸을 지닌 거구에다가 나중에는 아파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비올렛타는 너무나도 건강한 모습이어서 눈물을 자아나게 하는 비극적인 내용과 멜로디가 졸지에 코메디로 변해버린 것이다.

베르디 자신도 초연 실패의 요인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실패의 원인이 음악 때문인지, 가수 때문인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될 것이다.” 라고 말 하였다. 오페라에서 노래가 우선이 되어야지 외모가 우선이 돼서야 되겠느냐마는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라 트라비아타>의 초연실패가 이해가 될 것이다.

유학시절 오페라 <리골렛토>를 공연할 때였다. 나는 살인청부업자인 스파라푸칠레 역을 노래하였는데 마지막에 여자주인공인 질다를 죽인 후 어깨에 둘러매고 질다의 아버지인 리골렛토에게 넘겨주면서 돈을 받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질다역을 맡은 소프라노가 나보다도 더 큰 육중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만 무대에 ‘쿵...’하고 떨어뜨렸고 순간 엄숙했던 분위기는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나는 마지막 장면이었기에 퇴장하면 그만이었지만 질다역을 맡은 소프라노는 아픔과 창피함을 꾹 참고 끝까지 노래를 불러야했고 리골렛토역을 맡은 친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딸의 죽음에 슬픔의 절규대신 웃음을 참는 고통의 절규를 했었다. 오페라가 끝난 후 난 두 친구에게 따가운 눈총과 원망소리를 들었고 지금도 그때일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하지만 내 잘못이 아니었다. 소프라노가 너무나 거구였기에......

/ 박병훈(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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