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치압 하에서도 꿋꿋이 우리의 맥을 유지했던 선열들의 얼을 기리고, 태극기와 무궁화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광복절에 대형비리 관련자 11명이 8·15특별사면복권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회복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한순간의 놀라움을 지나 매우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의 가슴을 쇠창살 안에 갇히게 한 장본인들은 김종휘 전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이용만 전재무부장관, 안영모 전동화은행장, 이형구 전노동장관, 여기에 엄삼탁 전병무청장과 안병화 전 한전사장이나 김종호 전해군참모총장등 모두들 대형 비리시리즈에 연루된 사람들이다. YS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됐던 사정바람은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국민들로부터는 아낌없는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국방을 책임진 군조직의 안보강화를 핑계로 나라의 돈을 축낸 율곡비리, 금융권 감독책임이 있는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등이 금융권의 뇌물을 챙긴 동화은행비리 사건 등은 충분히 기분 좋지 않은 기억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기억의 주인공들이 ‘완전한 정상 사회인’이 된 것에 대해 각계는 상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한국당의 한 대변인은 “정부의 이번 특사조치는 비리관련자에 대한 관용의 뜻이 아니라 화합을 위한 것이다”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고, 야당의 대변인들은 하나같이 “한낱 정치쇼” “내년에 있을 대선에 대한 수작”이라는 말로 압축하고 있다. 이외에도 재야단체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고 있다. 「참여민주사회를위한 시민연대」와 「경제정의실천연합」등 재야운동 단체들은 지난 8월16일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부정비리 관련자 8·15특사조치 철회를 위한 시민단체 연대집회’를 가졌으며 이들은 YS정부가 정권 초 내세웠던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역사를 뒤로 돌리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더군다나 이번 사면복권은 시기적으로 미묘한 때에 이뤄져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시기에 나온 조처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난히 ‘화합’을 강조하는 것이 이들에게 ‘예비시범’을 보인 듯한 느낌을 받게까지 한다.

  정의를 외쳤던 5·6공 때의 재야인사들은 아직도 쇠창살을 통해 희망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희망 앞에 수억원의 뇌물을 챙겨도 2-3년만 고생하면 풀려난다는 선례… , 그렇게 풀어 줄 바에 왜 고생하며 잡아들였냐는 국민들의 냉소…, 이것보다 더 염려되는 것은 정부에 대한 불신의 가중이다. 앞에서는 서늘한 개혁의 칼로 ‘개혁’을 외치고 뒤에서는 기준 없는 면죄부로 사정없이 풀어주는 ‘개혁 끝!’을 말하는 현정부는 ‘역사바로 세우기’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 권미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