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시가있는하루] 간격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8.08.27  19:11:0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간격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보고서야 알았다

 

또 비가 오네? 올해는 비가 특히 더 많이 오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점점 더 종잡을 수 없이 우거져가는 느낌이 든다. 당신은 아마 비가 오는 날에는 숲을 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숲을 자주 찾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어느 날 숲에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면, 당신은 숲이 비에 젖어 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느낌은 빗물에 씻기는 자동차나 도로를 바라볼 때와는 다르다. 길이나 도로에서는 내가 그 ‘위에 있구나’라는 느낌이지만, 숲에서는 그 ‘속에 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거기다 비까지 내리면 ‘빠져든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당신이 숲을 좋아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다니는 학교의 이름에 숲이 들어간다는 건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가급적 ‘한림’이라는 게 무얼 뜻하는지 무슨 숲을 말하는 건지도 알아두는 게 좋을 것이다. 나 같이 그 뜻을 모르는 경우는, 누군가 "그 학교 이름이 무슨 뜻이에요?"하고 물어볼까 봐 졸업한 뒤로 가급적 학교 얘기를 안 하고 있다.

어쨌거나 당신이 다니는 학교를 그 이름대로 ‘숲’이라 치자면, 어쩔 수없이 당신들이 나무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시에 따르면 당신들에게는 좀 더 균일한 간격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간격이 있어야 바람도 통하고, 영양분도 나눠 먹고, 그 사이로 무언가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는 간격 없는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초/중/고 때 내가 끔찍이 싫어하던 전체 조회 중에서도 특히 싫었던 것은 "밀착!"이라는 구령이었다. 간격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알고 싶다면 밀착된 사람들에게 "한 팔 간격!"이라는 구령을 외쳐보면 안다. 저기 저 무리의 끝에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가며 간격을 어느 정도 벌려주기 전까지는 팔 하나 내 마음대로 올릴 수 없는 상황, 그것이 간격 없음의 상황이다.

다시 말해, 간격은 자유의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자유는 학생회관에 밥 한 번 먹으러 가려고 해도 반드시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만 가서 먹을 수 있는 종류의 사람들은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나무들이 바짝 붙어 있으면 어느 하나가 햇빛을 가리거나 못 받게 되고, 영양분의 섭취가 부족해져서 시들어가게 된다. 이를 테면 내가 김치찌개가 먹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이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따라가서 먹기 싫은 오므라이스를 먹게 된다거나, ‘단축 마라톤’에 참가하거나 ‘자살 포럼’이나 ‘심리학 세미나’에 참석하고 싶은데 다른 친구가 싫다고 해서 그 귀중한 체험의 기회를 빼앗겨 버리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

만약 당신들이 간격 없이, 자신 주위에 어느 정도의 스스로의 의지 같은 것, 자유와 나만의 개성, 이런 것들을 확보해두고 그곳에 바람이 통하게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 숲은 비가 오건 날이 맑건 별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숲이 될 것이다.

/ 김원국(시인ㆍ국문학과 05년 졸업)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한림대 수시모집 경쟁률 5.09대 1로 ‘3년 만의 상승’
2
[보도] 2023학년도 국가장학금 신청, 재학생 1차 필수
3
[보도] 코앞으로 다가온 졸업, ‘유예 신청’ ‘심사료 납부’
4
[보도] 4차 동아리 대표자 회의로 ‘유종의 미’ 거둬
5
[보도] 겨울밤을 수놓은 하나의 목소리, ‘한림합창단 정기공연’
6
[보도] ‘창의적인 아이디어’ 캡스톤 경진대회 실시
7
[기획] 1년 만에 부활한 총학, 4곳서 연장투표도 진행돼…
8
[선거특집] “학우들의 선택에 부응하는 학생회가 되겠다”
9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1
10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2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