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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조커'가 선택한 그림헤아릴 수 없는 공포, 베이컨의 <고기가 있는 인물>
신혜경 교수  |  shinh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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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8.28  13: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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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컨, <고기가 있는 인물> (1954)
첫 학기 첫 출발을 장식하는 그림치고는 여러모로 썰렁한 이 그림은 영국의 미술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이다. “왠 고깃덩어리? 설마 소고기 정국 때문?”이라고 갸우뚱하는 학생도 있을지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이 그림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자, 가벼운 수수께끼로 출발해보자. <브로크백 마운틴>의 히스 레져와 <디파티드>의 잭 니콜슨의 공통점은? 바로 <배트맨> 시리즈의 영원한 악당 조커를 연기한 배우들이라는 것이다. (잭 니콜슨이 보여준 조커와는 달리, <다크 나이트>에서 훨씬 더 음울하고 흉포한 이미지의 조커를 연기한 레져는 지난 1월 약물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되어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니콜슨이 등장한 <배트맨>(1989)은 팀 버튼 감독의 영화인데, 이 영화 속 한 장면이 지금 이 글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조커 일당이 고담 시의 미술관을 습격하여 위대한 명화들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대목을 기억하는지? 드가와 렘브란트 등, 내로라하는 불후의 명작들이 물감 세례로 난자당하는 가운데, 유독 한 그림 앞에서 조커는 칼을 휘두르려는 졸개를 제지한다. “이건 맘에 드는걸. 내버려둬.” 그 그림이 바로 베이컨의 <고기가 있는 인물>이다.  

베이컨의 그림에는 교황의 모습이 빈번히 등장한다. 베이컨은 벨라스케즈가 그린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다시 그렸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벨라스케즈가 보여주었던 위엄 넘치고 권위 있는 교황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를 소름끼치게 하는 것은 짙은 어둠 속에 갇혀진 한 공간과 그 속에서 눈도, 코도, 손도 무참하게 일그러져 버린 한 인물의 벌려진 입이다.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공포를 보여주듯,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무의 세계로 빨아들이는 듯, 이빨을 드러낸 채 시커멓게 벌려진 입은 뭉크의 <절규>를 그대로 닮았다. 베이컨은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의 오뎃사 계단 시퀀스에서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여인의 컷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인물은 매달린 고깃덩어리와 어우러져서, 어쩌면 도덕과 분별력을 잃어버린 타락한 도살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도살된 동물과 같은 처지에 놓인, 공포에 사로잡힌 또 다른 희생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아한 무대배경의 역할을 했던 주름진 휘장 대신에 섬뜩하게 매달린 거대한 살코기 덩어리는 렘브란트의 그림 <도살된 소>의 영향을 받았다. 이렇듯 서구 회화의 전통 속에서 음식물을 소재로 이용한 것은 특히 과일이나 음식물을 이용한 정물화를 통해 도덕적 메시지를 담았던 17세기의 이른바 바니타스 회화이다. 바니타스란 허무를 뜻하는 말인데, 그것은 썩고 변하기 쉬운 음식물을 상징적으로 이용해서 삶의 일시성과 감각적 쾌락의 위험을 경계하고자 했다. 그러나 베이컨의 그림은 그러한 도덕적 경구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그것은 눈과 코와 귀가 뭉개져버린 기관 없는 신체와 더불어 육체적 존재의 감각성 자체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제 회화는 더 이상 도덕과 미의 세계를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에게 일종의 감각적 폭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형상의 창조가 된다.

그러한 회화가 우리의 눈과 감각을 무자비하게 내려칠 때, “회화는 두뇌의 회의주의를 신경의 낙관주의로 전환”(들뢰즈)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새로운 잠재성을 무한히 생성시키는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서 말이다.

/ 신혜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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