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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45cm 떨어져 보세요마크 로스코, <검정위의 밝은 빨강>(1957)
신혜경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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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0.07  17: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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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2월 어느 추운 날 아침,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는 작업실 바닥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는 두 팔의 동맥을 면도칼로 그은 채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었다. 부검 결과 그는 손목 상처 이외에도 심각한 항우울제 중독이었다. 지난번에 뒤러의 <멜랑콜리아>를 소개하면서, 이번 주제는 왠지 로스코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다. 자살로 마감한 그의 삶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비극적 경험이 예술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그의 철학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그림이 이 10월의 정서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뭔지 모를 느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위의 작품은 <검정 위의 밝은 빨강>(1957)이다. 1950년대 중반 이전에 그려진 작품들이 밝은 빨강이나 노랑 같은 감각적으로 황홀한 색채가 주였다면, 그 이후의 작품들은 짙은 파랑이나 갈색, 검정 같은 어두운 색상이 자주 사용된다. 로스코는 평범한 소재들을 통해 고독한 개인의 가장 무력한 순간을 보여준 것이야말로 20세기 미술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했다. 그는 “생명의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 추상이란 있을 수 없으며, 고통과 환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그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단순히 색과 형태의 표현에만 관심 있는 추상주의자가 아니라, 비극과 황홀경, 운명 같은 근본적인 인간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45cm의 거리에서 볼 것을 권유했다. 그 거리에서 자신의 거대한 캔버스를 보면, 색면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과 더불어 불가해한 것에 대한 경외심, 나아가 인간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로스코의 커다란 그림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깊은 정신적 공감을 나누는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예술 감상이란 정신적 존재들 간의 진정한 결혼”이라는 그의 말처럼 말이다.

로스코는 “침묵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하면서, 후기로 갈수록 자신의 작품에 어떠한 설명도 달지 않았다. 말이란 관람자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끔씩 고된 일상에 지쳐 입에서 단내가 날 때, 침묵하고 있어도 그저 내 곁에서 함께 호흡함으로써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몹시도 그리워진다. 로스코의 작품이 우리를 감싸 안으면서도 숭고한 평안을 주는 그런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T에게 - <검정 위의 밝은 빨강>

                                                                              최영미

         이제 네 방엔 다른 여자
         가슴 큰 그녀의 사진이 웃고 있고 

         이제 네 꿈속엔 다른 인형
         들어와 팔베개하고 자겠지 

         언젠가 내가 뛰놀았던 초원에
         이름 모를 꽃들이 만개해 

         어쩌다 기억의 해진 갈피를 들추면
         흐린 풍경 속으로
         울면서 해가 지리니 

         검은 피로 물든
         그 그림에서 액자를 벗겨다오 

         맹렬한 몇 방울로
         흘러서 네게 가리니

/ 신혜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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