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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하루] 외할머니
이현준 작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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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1.04  19: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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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할머니 - 나태주 

        시방도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외할머니는. 

        손자들이 
        오나오나 해서 
        흰 옷 입고 흰버선 신고 

        조마조마 
        고목나무 아래 
        오두막집에서. 

        손자들이 오면 주려고 
        물렁감도 따다 놓으시고 
        상수리묵도 쑤어 두시고 

        오나오나 혹시나 해서 
        고갯마루에 올라 
        들길을 보며. 

        조마조마 혼자서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시방도 언덕에 서서만 계실 것이다, 
        흰옷 입은 외할머니는. 

외할머니를 난 기억하지 못한다. 말수가 적은 어머니는 당신의 어머니에 대해 단 한 번의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여태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래서 내 가슴엔 외할머니가, 없다. 친할머니는 딸 여섯을 줄지어 안긴 어머니를 미워했다. 뱃속에 나는 그 미움의 감정에 감기어 10달을 채워 태어났다. 아들이었지만, 할머니가 미웠다. 내 삶에서 나태주 시인의 따뜻한 할머니의 존재는 낯설었다. 어머니가 지금도 술을 취해 꺼내는, 임신한 며느리를 발로 찼던 할머니의 발길질에 내 머리가, 배가 여전히 얼얼하다. 

메를린, 내 나이 스물여섯에 얻은 외할머니의 이름이다. 미국에 있던 시절, 메를린은 내 친구의 하숙집 할머니였다. 작지만 아담했고, 좁지만 아기자기했던 그녀의 집을 좋아했다. 한국학생은 처음이었던 할머니는, 정 넘치는 우리를 아꼈다. 나는 늘 살가웠고, 그것이 지나쳐 그녀는 날 사랑해주었다. 할머니가 아끼던 작은 정원에 거라지 세일에서 산 예쁜 소품들을 사다 날랐고, 친구가 없는 날에도 할머니와 정원을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 있곤 했다. 난 영어가 짧았고, 그녀는 발음이 늙어 알아듣기 불편했다. 하지만 내 할머니의 늙음이라 이해했고, 그녀는 손자라서 이해했다. 그저 같이 있으면 편하고 행복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2년이란 시간을 함께했고, 그게 벌써 7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미국을 떠나던 날, 그녀는 나를 위해 옷과 책을 선물했다. 시간이 지나 옷은 솔기가 해어졌고, 오레건의 풍경이 담긴 책은 잊혔다가 다시금 내 책장에 꽂혔다. 리의 가족 여러분, 오레건 유진으로 놀러오세요. 그녀의 바람이 적힌 노쇠한 글씨에 난 마음이 아렸다. 외할머니를 너무 오래 잊고 산 죄책감이었다. 미국에 남아있는 친구가 소식을 전했다. 홈스테이와 바느질로 살아가던 할머니가 집대출금을 갚지 못해 작은 컨테이너 하우스에 살고 계신단다. 이제 여든이 다 되었을 나이, 그녀는 여전히 우리 얘기를 꺼내고 기다린다, 했다. 그때 함께했던 한국학생들은 할머니를 보러 가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 그들은 할머니의 존재자체를 잊었을 것이다. 제일 살가웠던 내가 이러하니, 내 탓이 먼저다. 

책에 담긴 오레건의 풍경을 손을 짚어가며 들여다본다. 유진에서 멀지 않았던 메를린의 고향을 다들 함께 방문한 적이 있다. 고즈넉한 바다풍경이 그녀의 고향다웠다. 아, 그 짙은 풍경이 떠올라 괜스레 눈물이 핑 돈다. 할머니가 혹여 우리가 오나, 조마조마 외로이 기다리며 서 있을까 해서 말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국행, 그저 죄스런 마음에 메를린! 불러볼 뿐이다. 아, 나의 외할머니.

/ 이현준(소설가 ․ 국문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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