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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하루] 유년의 바다
이현준 작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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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1.19  16: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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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幼年)의 바다
                                  - 서주홍

바다 쪽 동네 밖
산 언덕배기를 오르면

동무들 몰래 숨겨 둔
동화 나라 속

바다로 지는
저녁놀이 있었다

바다의 쪽배들이
소리도 없이
유년의 품으로 돌아오고

바다의 속삭임이
황홀한 바람을 타고 오면

동화 나라 속
내 유년의 바다
저녁놀처럼

수줍은 그리움이 있었다
아직도
동무들 모르는


어린 시절, 추운 겨울밤에 이불 속에서 누나가 해주던 이야기엔 많은 것들이 살고 있었다. 엉덩이는 뜨끈한 방바닥에 대고, 귓바퀴는 누나 입술에 대고 있으면 마치 그 존재들이 사는 세상에 맞닿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중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이야기는 땅속에 사는 난쟁이들에 관한 것이었다. 이야기 속의 난쟁이들은 사람들 눈엔 잘 띄지 않지만 탄광 붕괴로 목숨을 잃을 뻔 했던 광부들에게 물과 음식을 주기도 했던 선량한 존재들이었다. 난쟁이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바투 다가앉는 내게 누이는 이어 서울의 땅속 기차 이야기를 해주었다. 서울엔 땅속으로 달리는 기차가 있는데, 그 기차 길을 만들던 사람들이 난쟁이 마을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땅속을 한없이 파들어 가던 인부들은 놀랍게도 땅속에서 스며드는 불빛을 보았다는 것이다. 땅을 허물자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고 밝은 땅속 세상이 있었고, 많은 난쟁이들이 깔깔 웃으며 일꾼들을 반겨주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마을에서 움직이지 않는 시계를 벗어둔 채 오래도록 머물렀는데,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보니 자신들이 파내려가던 땅속 일터에 누워 있었다는 줄거리였다. 그 뒤로 난쟁이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가끔 땅속 기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난쟁이를 봤다고 증언을 했다니 거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특히 미국 뉴욕에 있는 가장 오래된 땅속 기차에선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특이하게도 난쟁이들은 미국이나 서울이나 다 똑같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누이가 즉흥적으로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이젠 누이조차 기억 못하는 나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골아이였던 난 꽤나 오래도록 이 이야기를 믿었었고, 처음으로 서울 지하철을 타던 날의 내 신경은 온통 어두운 창밖으로 던져져 있었다. 비록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무심한 나이가 되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땅속 난쟁이들이 자리를 잡고 숨을 쉬곤 한다. 몇 년 전 미 동부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의 그 어두컴컴하고 음습한 지하철에서 혹여 나를 향해 손짓하는 난쟁이들의 모습을 볼까 싶어 차창에 얼굴을 붙이고 어둠속을 응시했었다. 그때 정말 내가 난쟁이를 봤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나는 늘 궁금했다. 이젠 누군가에게 동화를 들려줘야 할 나이,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동화를, 어린 시절의 뒷산 어디쯤 살짝 묻어놓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 이현준(소설가 ․ 국문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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