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유난히 무더웠던 7월 어느 날 드넓은 태평양 상공을 지나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대규모의 공항, 도로, 키큰 나무들, 심지어 하늘도 크게 느껴질만큼 문자 그대로 大國 이었다. 일행은 버스를 타고 Bay Bridge를 건너 샌프란시스코와 마주하는 흑인 거주지인 오클랜드타운 외곽의 Mills College에 도착하였다. 각국의 친구들과의 어색한 만남과 반배정으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연속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수업을 하며 샌프란시스코 시내, 근교의 U.C. Berkely & Stanford University, 소살리토, 몬테레이와 카멜, 국립공원 등 많은 곳을 다니며 전부는 아닐지라도 미국의 모습을 느끼려고 노력하였다. 교통체증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잘 정비된 대중교통시설 및 고속도로, 장애인의 승차를 돕는 시설을 갖춘 버스, 곳곳에 줄지어 섰으나 서두르거나 얼굴 붉히지 않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은 늘 ‘빨리빨리’를 외쳐되는 우리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크략숀 한 번 누르지 않는 운전사와 가벼운 인사와 안부를 물으며 승차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선진국에서 길들여진 자연스러운 의식이었을까? 여하튼 조용히 줄을 서면 곧 차례가 오는 나라가 미국이었다.

  그러나 자유, 평등, 이상의 땅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미국의 실제 모습은 여기에만  있지 않았다. 지중해성의 유리한 기후 조건으로 미국내의 많은 거지와 부랑민들이 정책적으로 이주될 만큼 샌프란시스코 시내에는 수많은 버려진 자들이 길가에서 피켓을 들고 구걸하고 있었다. Gay St.에서의 게이들은 인종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권리를 내세우며 무지개 깃발을 높이 꽂고 그들만의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Golden Gate와 함께 미국의 자존심으로 여겨지는 유명하고 큰 Bay Bridge는 마치 흑인과 백인을 가르는 경계처럼 여겨졌다. 오클랜드 타운은 흑인 거주지라 범죄율이 특히 높다고 현지인으로부터 주의를 받을 만큼 미국인의 흑인에 대한 경계심과 편견은 매우 강했다. 사립과 공립학교 간의 극심한 교육시설의 차이를 비롯한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불균형은 사회 경제적 약자와 범죄자로서의 흑인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버클리에서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 유학생을 만나 사회학과 학생룸에 가게 되었는데 서른 명 남짓 한 학과 교수님들의 사진이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91년 단 두분인 흑인 교수님의 사진이 고의로 손실되어 다시 갈아 끼운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학회조차 인종별로 회원을 구성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미국 국민의 침묵보다 한 나라와 시대를 짊어진 엘리트들의 침묵과 편견이 순간 섬짓할 정도로 위험스럽게 느껴졌다. 이처럼 미국은 흑인과 백인과의 갈등만이 아니라 소수 민족과의 갈등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었으나 대다수의 미국인은 “이렇게 많은 인종이 별문제 없이 이정도 사는 것은 역사상 가장 큰 성과”라고  자찬하고 있었다.

  50개의 주경계보다 많은 분절과 갈등이 곳곳에 내/외재하고 있었으나 모두들 단지 ‘엄격한 共存’만을 즐기는 것 같았다. 백인의 기득권을 중심으로 철저한 공존을 느끼는 미국은 과거의 표현처럼 ‘Melting Pot’ 이 아니라 거대한 ‘Sallad Bowl’이었다. 기아의 우리 차 ‘Pride’가 ‘Ford’의 ‘festiva’ 란 이름을 달고 달리는 곳, 상점 구석에서 헐값에 팔려지는 우리 상표의 필름과 작은 기념품들, ‘Are you Japanese?’라고 묻는 외국인들을 보며 지 구본 위에서 코리아를 찾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세계화의 대세에 밀린 오늘날 언어보다 더 높은 의식의 장벽과 진정한 한국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는 21세기적 자각을 깨우쳐 준 좋은 기회였다.

/ 김혜선 (사회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