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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인문학의 위기①인문학의 발전, 근대성의 핵심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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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0.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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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위기’에 관한 담론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학술부는 인문학 위기의 원인과 이의 극복 방안을 세 차례에 걸쳐 시리즈로 싣는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근대사회 형성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첫 번째 생각해야 할 것은 인문학 발생의 모태이다. 인문학은 중세의 신학적 세계관에 도전하며 시작됐으며, 그 자체로 인간의 세속적 활동을 중시하는 학문이었음은 지난번 글에서 말했다. 즉 인문학은 우리의 관심의 초점을 신으로부터 인간에게로 변화시켰고, 한 발 더 나아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전도시켰다. 바로 여기서 ‘역사’의 개념이 나타난다!

  우리가 역사라는 학문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때는 변화와 발전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게 될 때부터이다.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돌리는 생각에서는 변화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세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발상은 언뜻 보면 당연한 진실로, 예로부터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발상은 이런 역사적 맥락 하에서 새롭게 생겨난 것이다.

  인문학자들은 이 생각을 최초로 제시한 철학자로 비코(Vico)를 거명한다. 그는 신이 창조한 자연세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존재는 신뿐이며, 우리 인간은 단지 우리가 만든 인간세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역사의 개념 뒤에는 다시 변화와 발전의 개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발전의 개념이야말로 근대성의 핵심이 아닌가! 마샬 버만(Marshall Berman)은 ‘모든 단단한 것이 연기처럼 사라진다’에서 근대성을, 끝없는 변화가 일으키는 현기증과 이에 적응하려는 인간의 노력과의 긴장관계로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근대적 긴장의 감정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준 최초의 작품으로 괴테의 ‘파우스트’ 제2부를 들고 있다.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판 파우스트는 처음에는 몽상가로, 다음에는 애욕의 인간으로 나오지만 마지막 단계에서는 지역개발자로 돌변한다. 영혼의 문제가 이제는 발전의 문제로 변모한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인문학은 르네상스 때에는 신학적 세계관에의 저항을 통해, 그 후 초기 근대사회에서도 발전의 개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면서 근대사회의 이념적 동력이 된다.

  그러나, 인문학이 항상 근대의 역사과정에서 진보의 편에 서거나 근대성 달성이 항상 진보의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17세기가 되면 근대의 동력은 물리학으로 이동하고, 자연과학적 객관성의 이념이 기성체제의 보수성과 대적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중세의 신학적 세계관에 도전할 때의 인문학은 오히려 상류계급의 교양으로 변질되면서 계급적 억압에 봉사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취향’이라고 번역하는 말의 영어 원어는 taste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문학적 취향에서처럼 일정한 지적 수준이나 세련된 생활태도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동시에 포도주 감별에도 쓸 수 있다. 포도주와 문학을 하나의 단어, 즉 하나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상류계층 출신일 뿐이다.

  하지만 인문학의 진보적 전통은 그 후에도 계속된다. 특히 18세기 계몽사상의 영향은 막강했다. 흔히, 계몽사상을 사회과학의 원조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계몽사상은 특정한 학문의 범주와 동일시 할 수 없다. 계몽사상의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가 ‘백과전서’(Encyclopedia)임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자연과학적 객관성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개인과 우주를 이성의 관점 아래서 한꺼번에 생각하려 했다. 그 결과는 계몽사상가들은 누구나 알다시피 기존 체제 속에 내재한 모순, 미신, 특권을 분쇄하는 합리적 이론을 제공한다. 프랑스 혁명은 계몽사상의 종말이었다. 혁명 이후 들이닥친 반동의 물결은 계몽사상을 크게 위축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몽이 뿌린 진보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19세기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사회적 적폐가 심각한 시대였다. 열악한 노동조건, 공동체의 몰락과 과밀도시의 압력, 계급적 분열과 사회적 혼란, 예술상품화 등이 대표적 적폐의 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군의 인문학자들은 ‘문화’의 개념을 만들어 낸다. 정신의 일반상태를 의미하는 오늘날의 문화개념 역시 옛날부터 있었던 개념이 아니라 17세기에 처음 나타나고 19세기에 와서야 정착됐던 단어이다. 사회가 분열되었을 때 누가 어떻게 총체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인문학자들은 이렇게 질문하고 문화 개념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파편화된 현실을 초월하는 보편적 진리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당대의 계급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인문학적 가치판단을 사고의 중심에 놓고 사회와 개인적 삶을 재구성하려는 전통은 20세기에도 지속된다. 특히, 19세기 말부터 대학에서 인문학부의 골격이 잡히기 시작하는데, 20세기 초에 오면 대학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다. 사회적 인정을 받은 셈이다. 그러므로 종합대학은 언제나 인문대학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때 이미 인문학의 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이 아이러니는 오늘까지 연속되는 문제이니만큼 그 원인를 따지면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극복방안도 보일 것이다. 이는 다음호 글에서 논하자.

/ 송승철(영어영문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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