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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하루] 하루살이와 나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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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2.13  21: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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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최문자

알 수 없는 식욕은 무서워
그것이 넘치고 넘치면 더 무서워
아마 죽어서 하루살이가 될꺼야
입을 싹뚝 자르고
전 생애를 굶으면서
하고 싶은 말들을 돌돌 말면서
입이 없이 새까맣게 고요해지는
하루의 끝.
오늘 어금니 한 개가 부러졌다.
몇 십년 식욕에 닳고 닳아서
죽은 갈비살 하나 못 이기고 툭 부러졌다. 어쩌면
하루만, 하루만 더 하고 삶을 구걸하지 않는
하루살이, 부러질 어금니 하나 없는 무음의 입
그 축복을 비척거리며 따라갔을까?
반쯤 남은 어금니를 물고
하루 종일 치통을 견뎠다.
하루살이의 전 생애를 굶으면서
입이 없는 연습을 했다.

 

  사람의 뇌와 기억은 이상해서, 어제 일어난 일인 것 같은데 헤아려보면 무려 7년이나 지나 있어서 놀랄 때가 있다. 2002년 월드컵이 그렇다. 그게 벌써 7년이 지났다. 첫 키스와 첫 섹스가 그렇다. 불과 지난달 같은데 6년이 지났다. 반면에 불과 얼! 마 전 일인데도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떠올려보면 무척 오래전 일인 듯싶은 기억도 있다. 숭례문이 그렇다. 1년 조금 넘었는데 아득하다. 조선 시대쯤 불탔던 것 같다. 이렇게 기억이 들쑥날쑥하면 내가 평생을 살고 죽을 때 내 삶이 어떤 식으로 기억날지 알 수가 없다. 2시간짜리 영화 필름에 누군가의 전 생애를 담아내듯, 대량의 편집 작업이 내 안에서 이뤄지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지난 한 달을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한 달 분량으로 느껴질 리가 없다. 지난 한 달이 십 분 혹은 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인 것 같다. 그것은 지난 한 달을 반추하는데 사용할 지금의 시간이 그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지난 한 달을 한 달 분량으로 느끼고 싶다면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지금이 중요하기 때문에, 과거를 생각하는 지금의 시간이 일부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과거가 짧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누가 쓴 글에서 본 건데, 하루 온종일 비가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는 ‘아, 세상에는 항상 비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생을 마무리한다고 한다. 지구의 역사가 대략 45억 년 이상이라고 하니 그 중 우리의 인생 몇십 년은 정말 하루살이 같을 듯하다. 강유미의 유행어처럼 ‘그래 우리가 뭘 알겠니’이다. 사람의 절대 길지 않은 수명은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하는 듯하다. 이 시에서도 주인공은 치통으로 때문에 만 하루를 굶게 된다. 하루의 배고픔. 그것은 하루살이에게는 전 생애의 배고픔일 것이다.

  혹시 하루살이의 배고픔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북한이나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하루살이처럼 살다 죽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떤 소년 병사는 평생을 전쟁으로 기억할 테고, 누구는 평생을 배고픔으로 기억할 것이고, 이스라엘 탱크에 돌멩이를 던지는 어떤 아이는 평생을 불공정함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은 아마도 요즈음을 경기 불황과 경쟁, 가혹한 취업난으로 기억할 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지난 삶을 얘기할 때, 자신 삶의 정체가 밝혀진다.

  여전히 사람들은 사랑에 열광한다. 드라마에서도 베스트셀러 소설에서도, 간혹 누군가가 시를 읽거나 쓴다면 그것도 사랑에 대해서일 것이다. 그렇게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일생을 차지하는 사랑은 수수하기 그지없다. 어느 비평가가 한 말이다. 한국에 이토록 사랑 노래가 많은 이유는, 현실에 사랑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일본의 한 뇌과학자가 쓴 책에 보면,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는 것은 지구의 60억 인구를 모두 살펴보고 자신의 2세를 위한 최고의 이성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뇌가 부리는 술책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있다. 최고의 선택이 불가능하니 아예 현실 자체를 다르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하루를 회사에서 보냈고 며칠 안에 오늘을 잊어버릴 것이다. 자신이 오늘을 잊어버릴 것을 알면서 오늘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누군가는 시를 쓰고 뭔가를 적어 남기려 드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하고 싶어서 하루살이와 비교하는지도 모른다. 하루살이에겐 내일조차 없는데, 그런 하루살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자신의 삶이 잊히기 싫어 사진을 찍고, 싸이월드에 그날의 사건과 감정을 적는다. 감정, 아, 감정. 사진은 남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감정은 남길 수 없다. 매일 사라지는 감정을 목격하고, 좀 더 무감각해진다. 약 11,315일. 어쩌면 너무 오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김원국 (시인․국문학과 05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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