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서울가정법원의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의 이혼률이 2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날의 가족은 과거의 전통적인 가족과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야말로 가장 급속한 변화를 겪은 사회제도 중의 하나이며 오늘날은 여러 가지 유형의 가족이 존재하고 있으며, 가족이란 개념을 확대하여 다양한 가구의 형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규명하는 경우 미혼 남녀의 동거가구, 동성연애자 가구, 독신가구를 비롯하여 어려 유형의 공동 거주 형태도 고려될 수 있기 때문에 현대 가족은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가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은 아직도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족의 실상과 관념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가족이란 전형적인 1차 집단으로서 가족의 성원을 양육하고 바깥 세상에 나아가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해낼 수 있게 준비시키는 곳으로 보는 견해가 아직도 지배적이다. 뿐만 아니라 가족은 여성의 영역으로 여성이 사회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자녀를 돌보고 가사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그대로 남아 있다. 현대 가족의 실상과 가족에 대한 전통적 통념이 부딪혀서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을 낳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가족을 모든 사회생활과 단절된 영역이라 하여 고립시켜 놓고 있다. 또한 가족은 정칟경제·사회적 상황의 폭넓은 맥락 속에 놓여 그 사회의 성역할 배치관계에 따라 구조화되고 있다. 따라서 가족이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관계는 가족이라는 범위를 벗어난 사건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역사상 현대적인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게 된 시점이 언제인지를 정확히 언급할 수는 없다. 가부장적 가족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계체제로 알려진 로마시대 가족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학자도 있고,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헌신적인 사랑과 기사도라는 특징으로 구분해 놓았던 중세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가부장적 가족이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형태로 서구의 역사상 줄곧 존재해 왔으나 현대적인 유형은 경제적, 정치적 격동기였던 중세후반, 곧 14세기경에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필립 아리스는 근대적인 유형의 서구 가족은 14세기에 시작해 17, 8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 왔으며 점진적인 변화를 거쳐 형성됐다고 서술하였다.

  우선 14세기에는 아내의 위치가 상당히 낮아 법률적 허가나 남편의 동의 없이 이뤄진 아내의 행동은 일체 무효 내지 실효성이 결여된 것으로 간주됐다. 16, 7세기에 부모와 자녀간의 친밀한 관계를 장려함으로써 정신적으로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학교교육의 보편화로 교육은 학교의 일이 되어 가족이 아동의 정서생활을 관장하는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18세기에 이르자 가족은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여기에 더해 외형적인 의미에서 본 가옥구조의 특성도 바뀌어 가정은 점점 배타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공용으로 사용되는 커다란 공간을 두는 대신에 방을 여럿으로 나누어 기능에 따라 분류하는 주거방식이 발달하였고, 이러한 변화는 생산과 교역이 공식적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반면 가정은 가사를 처리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정착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18세기 후반 및 19세기 초반에 걸쳐 일어난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변화는 가정생활예찬론이라 불리어졌다.

  가정생활이라는 관념은 여성으로 하여금 성별에 따라 구분해 놓은 역할 중 지극히 제한된 영역만을 담당하도록 하였고 이러한 관념에 덧붙여 각종 경제에 변혁이 일어나자 여성의 영역은 가족이라는 한정적인 사생활 공간으로 국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물론 이 때에도 노동계급을 비롯한 대다수의 여성들은 여전히 임금노동을 하는 상태였다. 가정생활에 대한 예찬은 여성의 경험을 감성적 차원에 묶어 두고 정신적 측면을 간과하도록 했으며, 동시에 여성의 역할을 주부로 국한해 놓고 이를 이상화해 여성과 남성이 경험하는 영역이 분절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부상과 함께 중상주의, 산업화 및 현금경제가 도입되었고, 곧 생산의 중심지가 가족에서 사회라는 공식영역으로 옮겨갔으며, 이에 따라 여성의 지위도 저하되고 무너지게 되었다. 가족과 사회의 분리는 가족 내 여성노동의 가치를 저하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성은 경제적 의미에서 더욱 더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가족과 작업장이 분리되자 가족은 생산적인 기능을 여전히 담당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취업인 노동자를 위해 신체적, 사회적 재생산을 담당하고 상품을 소비하는 곳으로 그 성격을 탈바꿈하였다. 이에 따라 가정주부, 곧 보수를 받지 않는 노동을 담당하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및 가치는 점진적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현대 가족은 자녀 출산, 정서 발달, 경제 소비생활 및 자녀양육 등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남성의 역할이 사회적 영역을 담당하는 것으로 규정되는데 반하여 여성의 역할은 가정 안에서 남성의 이러한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도록 뒷받침하는데 있는 것이다. 남성은 사회생활을 하다가 다시 노동할 여력을 얻으려고 가족으로 돌아오지만 여성은 대개의 경우 가사를 담당하는 자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가족발달사는 가족이 경제 및 정치구조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변해온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가족을 대체하는 여러 대안이 등장했다는 것은 현대적인 특성을 지닌 가구가 사회적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며,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가족 개념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현실을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윤현숙(사과·사복·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