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부모들은 모이기만 하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녀들이 열광하는 인기 연예인들 이야기다. 어떤 부모는 이해할 수 없다며 대책을 묻는 반면, 어떤 부모들은 이미 체념한지 오래되었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공연 혹은 방송출연을 보기 위해 밤새워 줄을 서는 것은 예사다. 최근에는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어 입건된 연예인을 두둔하는 글로 경찰청 인터넷 사이트가 도배되었다. 그뿐 아니다. 특정 연예인을 비판적으로 다룬 방송 프로그램에 항의하여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끝에 광고가 나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쯤 되면 청소년들의 연예인 추종은 집안 문제를 넘어서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 주위를 다시 돌아보면 열광의 대상은 연예인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청소년들의 게임에 대한 열광도 만만치 않다. 스타크래프트와 포트리스 등으로 PC방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이 일상화된 지 오래이다. DDR의 열풍이 부는가 싶더니 이제는 펌프로 옮아갔다. 느닷없이 인형뽑기가 바람을 일으켜 용돈을 모두 털어 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혹자는 이런 열광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젊음의 열기를 발산할 통로가 막힌 우리 현실에서 청소년들이 그 열기를 쏟아부을 대상을 연예인이나 게임, 인터넷 등에서 찾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열광이 현실세계를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저해한다는 데에 있다. 상식적인 판단을 흐리는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그들은 울부짖고, 몰입하고, 결국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청소년들은 열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첫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세대적 특성이다. 청소년기에는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고 열정을 쏟아 붓고 싶은 충동이 넘치는 법이다. 철학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이다. 하지만 세대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N-세대라는 표현 속에는 상업화된 대중 문화의 엄청난 영향, 형제가 거의 없는 혼자 만의 성장과정,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독립심과 구속에 대한 반항 등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성장 경험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다 입시위주의 학교생활에 대한 염증과 가속화되는 교실 붕괴를 지켜보면서 커져버린 현실에 대한 불안감 또한 한 몫을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친숙하게 여기는 대상에 그 열정을 쏟아 붓도록 부추긴다. 바로 그 친숙한 대상이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온 대중매체 속의 연예인과 게임인 것이다.

  두번째로 청소년들의 열광을 부추기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특성이다. 청소년들의 열광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쫓아다니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집단적 현상으로서 나타난다. 그렇기에 사회적 충격과 우려도 더 커지는 것이다. 인기 연예인들의 팬클럽은 이제 단순한 동호인의 자유로운 모임이 아니라 치밀한 사회적 조직으로 역할의 분화와 지위서열까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들은 효과적 동원을 위한 구조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게임 매니어들도 역시 자기들 나름대로의 전문가 세계와 문화, 조직구조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집단과 조직을 항상 개인보다 우위에 두는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가 투영되어 나타난 결과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특성이다. 역사학자인 홉스봄은 20세기 말을 극단의 시대라고 부른다. 우리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고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이미 없어진 것이다. 니체는 이미 오래 전에 신의 죽음을 선언하였고, 근래 포스트 모던을 외치는 사람들은 이성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듯한 것이 우리의 생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이러한 우리 일상에서의 무중력, 무질서와 방향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집착과 열광의 대상을 찾아나선 결과가 바로 우리의 젊은이들이 보이는 열광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매니아적 열광, 그것은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요, 가족과 학교만의 문제도 아니요, 우리의 사회와 시대의 문제도 되는 것이다.

/ 한준(사과·사회·전임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