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어떤 대상을 추종하고 연구하는 사람을 가리켜 부르는 ‘mania’는 사실 ‘maniac’이 맞는 표현이다. 그러한 문화를 가리켜 매니아문화라고 통칭한다.(이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매니아’를 그대로 사용한다) 매니아문화는 20세기 후반의 대중문화의 발달에 따른 여가와 오락의 새로운 형태로서 등장한 것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존의 문제를 벗어나게 되면서 생활의 측면에서 새로운 형태의 유흥거리를 찾게 된 것이 매니아문화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매니아문화의 형태는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90년대 들어 PC통신과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각종 동호회의 등장이 매니아문화를 확산시키는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라면동호회’나 ‘지하철동호회’ 등은 우리들에게 익히 알려진 것들이며 요즘에는 에로비디오를 좋아하는 매니아들도 등장했다고 한다. 가장 보편적인 매니아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스타 연예인들에 대한 팬클럽이 아닐까 싶다. 인기 연예인에서부터 테크노뽕짝에 이르는 이박사, 그리고 운동선수, 영화배우 등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면 최소한 몇 개의 팬사이트가 있을 정도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팬클럽의 형태는 단순히 좋아하는 ‘팬’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 ‘매니아문화’의 요소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야오이’라 불리우는 일본의 미성년 동성애만화를 모방해서 유명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 ‘팬픽’이 그렇다. ‘팬픽’은 팬과 픽션의 합성어로서 팬클럽 사이트에서 발견되지만 그 내용은 야설과 같은 성인용을 빰칠 정도다. 작년 어느 방송국에서 이것을 문제삼으려 하자 방송국의 홈페이지 게시판과 전화는 팬들의 협박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팬들의 집단적 문화를 가리켜 ‘팬덤(fandom)문화’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한 팬클럽을 넘어서 이익집단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새롭게 등장하는 매니아문화는 문화적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폐쇄성과 집단성을 기반으로 자신들을 ‘건드리는’ 다른 집단에 대해 공격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 얼마 전 HOT의 강타가 음주운전 사고를 냈을 때, 팬클럽은 그 위력을 발휘했다. 강타의 도주를 주장한 운전사는 그들의 말대로라면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야 하고, 관할 경찰서 홈페이지는 방문객의 폭주로 한때 다운되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지난 9월을 전후로 서태지의 컴백 때에도 있었다. 서태지가 컴백 공연에서 립싱크를 하자 대부분의 음악인들은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으나, 일부 팬들은 적극적으로 서태지를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매니아문화가 가질 수 있는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본래의 긍정적 효과는 어느 덧 사라지고, 오히려 또 다시 자기동일성과 배제의 문화에 기초해서 타자를 억압하고 공격하는 집단이기주의만 남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오타쿠’를 참고해 볼 만하다. 오타쿠는 한 사람 혹은 대상을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따라다니기보다는 그 대상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가치판단까지 제시하는 비평적 역할을 수행한다. 서태지나 HOT를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요 발전과 나아가 우리사회의 문화적 성숙을 위해 그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비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분명히 매니아문화는 양적인 측면에서 문화를 발달시켰으나 그 질을 담보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매니아문화의 문제점이 극복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 문화를 형성하는 매니아들의 자기비판으로서의 자정능력이 필요하다. 즉 강타의 음주사건과 같은 일에 대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옳은 것은 구분되어야 하는 사회적 인식이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차이와 다양성이 긍정되고 서로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매니아문화는 그 길로 가는 건널목에 위치해 있다.

/ 권경우(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