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고 했다. “비빔밥은 보기에는 좋지만 일단 먹으면 깜짝 놀란다. 나올 때는 밥 위에 채소와 계란 등이 얹어져 아름답게 보이지만 먹을 때 숟가락으로 뒤섞으면 정체불명의 음식이 된다. 비빔밥을 먹은 미국인이 양두구육에 경악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산케이신문 한국 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씨가 내린 비빔밥에 대한 평가다. 맞다. 양두구육이다. 비빔밥이 양두구육이라는 것이 아니라 비빔밥에 대한 그의 평가가 ‘겉보기만 그럴듯해 보이고 속은 변변치 못한’ 양두구육이다. 참으로 유감스럽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위안부 결의안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으로 유감이다”고 표명한 일본 정부의 태도가 유감스럽고 30년이 넘는 한국 생활 동안 ‘맛있는 수다’와 같은 한국 음식에 관한 책까지 저술했던 구로다씨의 비빔밥 평가가 유감스럽다. 한편으론 실망스럽기도 하다. 과거를 잠시 덮어두고, 동일본 대지진 참사의 빠른 복구를 위해 보낸 대한민국의 성금이 ‘독도 망언’으로 돌아와서 실망스럽다. 참담한 심정이다. 절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화해도 할 줄 모르는 친구를 둔 심정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말이 좀 통할까? 이 친구와.
말 안 듣고 고집 센 친구를 위한 효과적인 교육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거울요법. 못된 친구에게 자신과 닮은 친구를 한 명 보여 주자. 그리고 넌지시 저 친구 어떠냐고 물어보자. ‘별론데, 너무 자기 멋대로네 고집도 세고..’ 그러면 이렇게 대답해주자. ‘쟤랑 너랑 진짜 비슷해, 알고 있었어? 근데 쟤가 너보다 훨씬 나아.’
일본 정부에 독일을, 정확히 말하면 나치의 만행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자. 나아가 비교해 주자. 빌리 브란트 전 독일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폴란드 국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자. 그리고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고발한 어느 외국인을 집단 폭행하고 있는 일본인들 사진을 보여주자. 일본 정부에게 진정한 화해의 제스처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자. 유감이라는 표현보단, 무릎 꿇고 있는 사진 한 장이 훨씬 가슴속에 와 닿는 표현임을 알게 해주자. 아니면 지금부터 소개할 책 ‘처절한 정원(미셸 깽)’을, ‘진정한 화해의 제스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책을 일본 정부에게 선물하자.
1999년 10월 프랑스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모리스 파퐁의 재판으로 시끄러웠다. 2차 대전 후 파퐁은 자신이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였다고 주장하고 행정장관, 파리 경찰국장, 예산장관 등을 역임한다. 그러나 40년간이나 지하에 묻혀 있던 그의 범죄는 마이클 슬리턴이라는 역사학자에 의해 모두 폭로되고 만다. 그에 의하면 파퐁은 1942년에서 1944년까지 1천 600여 명의 유태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다. 희생자 유족들의 고발로 파퐁은 1983년 정식 기소되지만 그를 법정에 세우기까지는 16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나치의 꼭두각시 정권이었던 비시 정권하에서 일했던 관리들의 수동적 행위에 대한 단죄 여부가 한동안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1995년 쟈크 시라크 대통령이 취임하여 유태인 강제수용에 대한 프랑스의 국가적 책임을 처음으로 시인한 후 파퐁은 드디어 재판에 회부, 89세의 나이에 10년형을 선고받는다. 나치의 반인륜적 범죄 처벌에는 시효가 따로 없고, 예외가 없다는 것이 유럽 국가들의 변치 않는 입장인 것이다.
‘처절한 정원’은 보르도에서 열린 모리스 파퐁의 재판을 배경으로 ‘어릿광대’ 얘기로 시작하고 끝나는 책이다. 작가는 도입부에서부터 모리스 파퐁의 재판이 열리고 있는 법정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어릿광대를 등장시킴으로써, 자칫 지나친 감성주의로 빠질 수 있는 주제를 담담하고 위트 있게 전개해간다. 이 책의 어릿광대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법정에 앉아 낡아 빠진 여행용 가죽 가방을 무릎 위에 놓고 이렇게 외칠 뿐이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천 마디 말보단 단 한 번의 행동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드러난 진심은 머릿속에 강하게 남는다. 마찬가지로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수상 역시, 폴란드 국민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에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수상은 그날을 회상하며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진정한 화해의 제스처란 굳이 말이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 류명재(언론·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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