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고 읽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다. 베스트셀러에 대해서는 그 한계를 언급할 필요도 없거니와 권장 도서라고 하는 것도 선정자의 지적 관심과 독자의 수용 태도에 따라 반드시 양서로 작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필자는 권장 도서에 대해 반감이 적지 않았던 터라 학보사의 추천 도서 및 서평 요청에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동안 의미를 준 책’도 좋다는 기자의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에 필자가 언급할 책은 편협한 독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니 읽는 이들의 양해를 바란다.

6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지금은 세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성공 요인에 대해 흔히 한국인이 가지는 특유의 근면과 성실함을 내세운다.  우리는 지금도 가끔씩 수면 및 휴식 시간을 아껴가며 생산량 증대에 힘을 쏟고 있는 산업 현장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곤 한다. 특히 명절 때 단골 뉴스 가운데 하나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근로 현장의 모습이다. 안전모를 쓴 기자가 흥분하면서 “명절이지만 수출 기한을 맞추기 위해 이 공장의 기계는 쉬지 않고 돌고 있습니다”는 둥, 인터뷰한 노동자는 “집에 가서 놀고 싶지만, 수출에 일조하는 것이 더 보람이기 때문에 일하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일등 산업 역군’이라는 고딕체의 자막이 흐르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성장’은 선이요, ‘휴식과 수면’은 악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필자는 쉼 없는 정진과 성실한 마음이 새 역사를 창조하는 밑거름인 줄 알았다. 그리고 문학 시간에 배웠던 <도산십이곡> 중 “청산은 어찌하여……”는 만고의 진리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은 산과 끊임없이 흐르는 물처럼 지속적인 노력을 미덕이라 여겼던 것이다. 수험생에게 충분한 휴식과 수면은 주적이요, 불면 학습은 자랑이자 희망이라 생각했다. 그때는.
  
이후 간헐적으로 들리는 과로사 소식은 단군 이래 최대의 수출 실적 뉴스에 묻히기 일쑤였고, 심야 편의점에 있는 점원의 퀭한 눈을 위로하기보다는 밤에도 물건을 살 수 있다는 흥분이 앞섰다. 밤을 잊는 그대를 위해 심야 버스, 24시간 마트 오픈, PC 방 등 우리 사회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결국 우리는 잠을 잊었던 것이다.

대낮 같은 밤을 만들어 낮보다 더 열심히 사는 우리는 분명히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연일 우울한 이야기들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신문에 실릴 뿐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몹시 궁금했고 그만큼 답도 거창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간단했다. 바쁘게 찾아낸 답들은 “느림의 미학”, 《무소유》 그리고 스탠리 코렌의 《잠 도둑들》등이었다. 특히 《잠 도둑들》은 필자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때까지 가졌던 휴식과 수면에 대한 생각을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소 극단적이지만 최근에 일어난 세계적인 참사와 현대인의 각종 질병의 원인을 잠 부족으로 봤다. 에디슨의 전구 발명 이후 인간의 평균 수면 시간이 2시간 이상 줄어들게 되자 이에 따라 개인적, 사회적 여러 부작용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체르노빌의 원전 사고, 스리마일섬의 ‘침묵의 봄’, 우주선 챌린저 호의 폭발 등을 들었다. 이외에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는 정신 질환도 빼놓을 수 없다.
  
물질적 풍요나 그 밖의 욕망을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이런 개인들이 모인 사회는 그렇지 않은 곳보다 윤택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를 유지하고 보전하기 위해서 적은 잠을 요구할 수 있고, 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일정량 이상을 자야 하는 인간이 현대에 들어와 그렇지 못한다면 인류사는 과연 행복의 진보를 이뤘다고 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노동의 시간을 줄여주고 대신 여유를 제공한다고 하고 있지만, 기계가 일하는 동안 인간은 또 다른 일을 강요받는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풍요를 여유 있게 누리는 것도 중요하다. 달콤한 휴식과 충분한 수면을 취한 사람은 휴식 소비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 풀리던 문제를 숙면 이후에 쉽게 풀었던 경험들을 떠올려 보라.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잠(휴식)’에 대해 관대해지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필자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이라면 위 책을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김명준(국어국문·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