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사의 서평 요청을 받고 수락하고 난 뒤 필자는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지난 십 수 년을 실험을 하는 분야에 있다 보니, 많은 논문을 읽기는 했지만 소위 말하는 책다운 책을 일 년에 한권이상 읽지 않은지가 오래된 내가 과연 서평을 저술할 자격이 있는 가부터 시작해서, 서평으로 평할 책이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나를 엄습했다. 그래서 우선을 처음 찾아본 것이 신간 베스트셀러였다. 우선은 베스트셀러는 나름대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면에서 뭔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도서관에 있는 신간 베스트셀러들을 읽다보니, 베스트셀러니 권장 도서니 하는 것은 선정자의 지적 관심과 독자의 수용 태도에 따라 반드시 양서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국문학과 김명준 교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이에 필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책은 독자가 대학교 때 (그때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많은 책을 읽고 있었다.) 읽고서 감명을 받았던 책들 중에 한권이다. 이 책 또한 필자의 편협한 독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니 이 서평을 읽게 되는 분들의 양해를 바란다.

우선 작가인 A. J. Cronin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1896년 영국에서 태어나서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1차 세계 대전 때에는 영국 해군에서 군의관으로 종군했다. 그 후 계속 의사로서의 길을 걷다가 1930년 개업했던 병원을 그만두고 집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31년에 첫 작품인 ‘Hatter's Castle’을 발표했고, 이후 1935년 사회 문제에 대한 고발과 성찰의 성격이 강한 ‘The Stars Look Down’과 ‘The Citadel (성채)’를 집필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됐다. 그 후 1941년에 ‘The Keys to the Kingdom (천국의 열쇠)’를 출판해 1944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필자는 이 책을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누나와 친구의 권유에 의해서 읽게 됐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프랜치스 치셤 신부가 참된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그 당시 필자는 우리나라의 남자 대학생들이 모두 그러하듯 군대문제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가치 있게 살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였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삶이란 무엇이며 참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수많은 자문자답을 하며 밤을 새워서 읽고 생각하고 고민했었다. 물론 이 책이 그것들에 대한 답을 준 것을 아니지만, 이러한 실천적인 문제에 대해 정말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는 실마리와 방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부로서 사랑과 종교에 대한 남다른 주관을 (조금은 교조주의적이 아닌 모습) 가지고 한결같이 실천하는 모습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고, 필자도 그럼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 후로 항상 그 때의 마음을 간직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의 20년이 지난 오늘 다시 서평을 쓰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아보게 됐다. 무척 놀랍게도 이 책의 번역본이 무려 학교 도서관에 있는 것만 5종류라는 것을 알았다 (1982, 1987, 1991, 1995, 2005년에 각기 다른 역자에 의해 번역된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책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런데 이 5권의 책들 중 필자가 읽은 것이 어느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아마도 87년판이나 91년판이 아닐까 하지만), 역자의 말을 읽어가던 중 조금 충격적인 말을 보게 됐다. 

한 번역본에 “Cronin의 작품세계가 오늘의 선교에 부합되지 못한 주의와 사상이 있어서, 우리의 신앙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을 과감히 삭제해 신교목사들이 안심하고 평신도들에게 권할 수 있으며, 모든 크리스찬들이 바른 <구원관>을 가지며 바른 신앙 성장을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번역하였음을 밝혀둔다.” 라는 말이 있다. 이 글을 보면서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을 번역했는가라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다면 차라리 번역하지 않는 것이 옭지 않았을까? 번역이라는 것은 우선은 원본과 원작자의 의도에 충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역자 자신의 생각을 가미할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틀은 벗어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면 단순히 번역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을 왜 굳이 내용을 삭제해가면서 까지 번역을 했을까? 물론 역사를 기술하는 입장에 있다면 역사를 기술하는 관점인 사관이 있어야하고 당연히 사관에 입각해 경중을 두는 사건이 달라지며 그에 따른 해석도 달라지지만,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거나 논평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문학작품을 단순히 번역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문학작품의 번역에도 종교관에 따른 칼질을 해야 하는 것일까? 고전이 빛나는 이유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들어 우리에게 삶의 교훈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책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번역돼야 하며, 그 책에 녹아있는 사상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독자의 몫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삶의 실천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답을 구하고 어떤 삶이 남들과의 조화로운 삶이 될 수 있는 지, 그리고 어떠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며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갈구하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우리 대학생들), 완전히 번역된 (하나도 삭제되지 않은)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정태(화학‧조교수)